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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인종 차별 체험이 청소년 흡연의 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청소년 흡연 문제에는 분명 인종적인 요인이 있다. 인종 차별에 의한 것을 포함해 모든 스트레스가 신체에 주는 영향은 신체적 지표로 측정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주는 긴장감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색 인종이라고 경찰이 정차 지시를 한다거나, 공항에서 추가 보안 검색을 하거나, 학교 또는 직장에서 사소한 도발을 받게 되면 심박, 혈압, 땀샘 등에 변화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인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도망 또는 응전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코르티솔을 포함한 여러 호르몬을 분비하게 된다. 그리고 위험한 상황이 끝나면 신체도 다시 평시로 돌아가려고 한다. 따라서 호르몬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포를 제험할 때면 이러한 자연의 조절 체계도 무력화되기 시작한다.
네블렛은 “인종 차별을 포함해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가해질 경우 인체는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결국 다른 질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면역계마저 약해질 수 있다. 지난해 12월 ‘프로퍼블리카’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흑인 여성이 임신 중 체험한 스트레스 및 인종 차별의 강도와 임산부 사망률은 비례할 수 있다고 한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지닌 여성들도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체험할 경우 높은 임산부 사망률을 보인다고 한다. 네블렛은 “기존의 많은 연구는 개인 간의 인종 차별 체험에 주안점을 두었으나 우리는 개인에 주안점을 두고, 더 큰 시스템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의 담배 업계는 흑인을 포함한 여러 소수인종들에게 오랫동안 공격적인 마케팅을 대놓고 해 왔다. 지난 1993년, ‘뉴욕 타임즈’의 어느 칼럼니스트는 어떤 담배 회사 중역과의 대화 내용을 기사화했다. 그 중역에게 담배로 부자가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우리 담배를 그토록 많이 사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 젊은이들, 흑인들, 바보들이다.”
오늘날 미국 흑인들은 멘솔 담배 등 중독성과 위험성이 가장 강한 담배를 다른 인종들보다 더 많이 피우고 있다. 민트 에센스를 함유한 기침 방지용 드롭스나 감기약과 마찬가지로 담배에 들어간 멘솔 역시 흡연자의 목구멍을 식히고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미국 흑인 미국인 담배 예방 네트워크(NAATPN)의 홍보부장인 라트로야 에스터는 이러한 멘솔이 독한 담배 연기를 맛있게 바꿔준다고 말한다. 그녀는 “멘솔 때문에 흡연을 시작하기가 쉬워지며, 금연을 하기는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또한 멘솔은 담배 연기의 맛을 감추므로 담배 연기를 더 쉽게 빨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질병 통제 예방 본부(CDC)에 따르면, 이 때문에 유해 화학 물질이 인체에 더 잘 흡수된다고 한다. CDC의 데이터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팔린 담배 중 26%를 멘솔이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 흑인의 경우, 12세 이상 흡연자 중 무려 90%가 멘솔을 선호한다. 그리고 흑인은 백인에 비해 금연 시도를 더 많이 하지만 성공률은 백인보다 낮다.
담배 회사들은 멘솔 담배를 미국 흑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마케팅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말보로 맨’은 암을 유발하는 자사 제품을 매력적으로 보이려는 담배 대기업의 시도 중 가장 악명 높은 사례 중 하나다. 그러나 헤스터에 따르면, ‘말보로 맨’은 흑인들에게 그리 매력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담배업계는 197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의 이미지를 이용했다. 헤스터는 “‘쿨’ 같은 브랜드는 자신이 흑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프로 헤어스타일의 미국 흑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매우 진보적인 판촉 방식이었다. ‘쿨’은 멘솔을 판촉하기로 결정한 후, 매우 계산적이고도 공격적인 방식으로 판촉을 실시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TV를 통한 담배 광고가 불법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매체에서의 담배 광고는 TV만큼 심한 연방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헤스터는 “흑인 지역공동체에 가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담배 광고다. 도처에 담배 광고 입간판이 서 있고, ‘에센스 앤 에보니’ 지 같은 잡지에도 담배 광고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 2009년 미국 FDA(식품의약국)은 미국 내의 가향 담배 판매를 금지하기 직전까지 갔다. 이 기관이 제출한 가향 담배 판매 금지 법안은 결국 통과되기는 했으나 담배 회사들의 치열한 로비로 인해 멘솔 담배는 규제 대상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NAATPN은 멘솔 담배의 위험성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고취하고, 지역 단위 멘솔 담배 규제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까지 샌 프랜시스코와 미네아폴리스를 포함한 대도시에서는 멘솔 담배 규제 법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담배 업계는 언제나 한 발짝 더 앞서 나아가 있는 것 같다. 헤스터는 “지역 공동체 및 정책 결정자와의 대화 자리에는 반드시 담배 업계의 대표자들이 나와서 우리의 노력을 저지하려고 한다. 그들은 멘솔 담배를 법으로 금지하면 그걸 사 가는 흑인 미국인들은 범법자가 되고 말 것이라고 지역 공동체에 주장한다”라고 말한다.
미국 흑인 법집행 간부 조직(NOBLE)과 같은 조직에서도 이러한 태도를 공개적으로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강력하다. 지난 2014년 뉴욕 경찰관들이 흑인 에릭 가너를 초크홀드 기술로 붙잡았다. 가너가 “숨을 못 쉬겠다”고 계속 말했는데도 경찰관들은 그를 놔 주지 않았고, 결국 가너는 질식사하고 말았다. 길에서 담배를 팔았다는 게 가너의 죄였다. 이러한 측면을 지닌 진실도 논쟁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NOBLE의 후원사 중에는 담배 기업인 ‘레이놀즈 아메리칸’ 사도 있다. 이 회사의 ‘뉴포트’ 담배는 미국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멘솔 브랜드다.
CDC는 흑인 대학, 장학금 프로그램, 시민 단체 등 여러 흑인 문화 기관들이 오랫동안 담배 업계의 기부금을 받아온 사실도 지적한다.
헤스터는 “인디언, 성소수자, 흑인 등 미국 내 거의 모든 소수계층의 흡연율은 미국 평균을 능가한다. 이는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담배 업계가 이윤 창출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담배 업계가 이들 소수계층을 소모품으로만 여긴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소수계층의 흡연을 사회 정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BY AMAL AH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