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로맨스인가 추리극인가 스릴러인가, 아니면 ‘모듬’인가.
4부작 ‘계약우정’으로 다시 월화극에 도전장을 냈으나 쓴맛만 봤던 KBS2가 청춘스타들을 앞세운 ‘본 어게인’을 새 카드로 꺼내들었다. ‘두 번의 생으로 얽힌 세 남녀의 운명과 부활을 그리는 환생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라는 호기로운 소개글과 달리 첫 방송만 봐서는 환생보다 혼란에 가깝다.
20일 방송은 4분가량 현생에서 주인공들의 인연을 소개한 뒤 80년대 ‘전생’으로 향했다. 연쇄살인범 아버지를 둔 공지철(장기용), 청순가련 심장병 환자 정하은(진세연), 그녀의 약혼자이자 형사 차형빈(이수혁)의 인물 소개로…. 사실 공지철이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됐는지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어린시절 학대받으며 살아온 공지철에게 정하은은 처음으로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준다. 성당 창문 아래로 비치는 환한 햇살 아래, 마치 천사처럼 다가온 그녀는 그에게 “아프게 한 사람이 나쁜 거다. 다음 생엔 아프게 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라”며 “몸은 죽어도 영혼은 다시 태어난다. 넌 다시 태어날 수 있어”라고 말해준다. 실제로 이런 말을 들으면 욕설부터 튀어나오거나 손에 든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할텐데 공지철은 의외로 사랑에 빠져버린다.
이게 무슨 말인지 파악하기도 전 카메라는 계모에게 학대를 받는 아이에게로 향한다. 공지철은 이 아이에게 “부모는 필요없다. 네가 선택하면 된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던진다. 그리고 계모에게 붙잡혀간 아이는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는 아이가 계모로부터 죽임을 당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복수인지, 정하은에게 줄 심장을 마련하기 위함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싸늘하게 자기변명만을 늘어놓는 그녀를 무언가로 내리친다.
드라마의 성패를 좌우하는 첫 방송부터 삐걱거린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없어 각각의 에피소드가 겉돈다. ‘과거 악연으로 사망한 세 남녀가 2020년 다시 만나고, 연쇄살인이 다시 일어난다’는데 그 악연도 안 나왔다.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만큼 이야기는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지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아픈 여성과 그녀를 지키는 남자의 순애보, 이를 또 그림자처럼 바라보는 남자를 더해 ‘악연이 될 수밖에 없는 삼각관계’를 만들어낸다. 수도 없이 봐온 클리셰(진부한 표현)로 어떻게 될지가 훤히 보인다.
팽팽한 삼각관계를 만들기 위해 작품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공지철이 살인을 저지른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불쌍함→위로→그녀를 위한 복수 3단계로 변하는 공지철의 감정은 에피소드가 바뀌면서 툭툭 끊어져버린다.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어머머 저걸 어째’라며 봐야 할 살인 장면에서 ‘아’ 하는 정도로 시청자들은 약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이야기가 현대로 전환된 이후 인물들의 선택에 ‘왜’라는 의문을 갖게 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의 일을 대입해 현재 각자의 선택과 책임을 구현하는 재미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여기서 ‘무슨재미’가 빠져버릴 수 있다. 초반에 바짝 끌어올려야 할 동력을 상실하면 이야기는 끝까지 힘을 잃게 된다.
연쇄살인범에게 당위성을 주기 위해 ‘광염 소나타’를 차용한 부분도 아쉽다. 공지철의 아버지이자 연쇄살인범 공인우(정인겸)의 캐릭터는 김동인의 1930년작 ‘광염 소나타’에서 따왔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가난 때문에 어머니가 죽은 뒤 방화(放火)를 하면서 속에 있던 야성적 천재성을 꺼내게 되고, 이후 방화·살인을 할 때마다 천재적인 음악을 쏟아내게 된다. ‘사회가 용납하기 힘든 극단적인 미의식’에 대한 고민을 제치고, 그저 연쇄살인의 당위성만 부여하기 위해 이 소설을 차용했다는 점은 적절치 못하다.
앞으로 작품은 공지천의 사형담당 검사이자 환생한 공지천(천종범)의 아버지 천석태, 그를 노리는 재벌가의 아내 장혜미, 그의 예비사위인 검사이자 차형빈의 환생인 김수혁, 그에게 칼을 겨누는 조폭 서태하(최대철) 등의 인물을 쫓고 쫓기는 갈등요소로 투입할 계획이다. 이 복잡한 인물관계를 과연 어떻게 풀어낼까.
공식 홈페이지 기획의도 마지막 부분에는 ‘전생부터 이어진 처절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복수의 인연, 우연이 아닌 철저한 ’전생의 논리‘로 얽히고설킨 그들의 퍼즐은 과연 어떻게 완성될까?’라고 적혀있다. 묻고 싶다. 진짜 어떻게 완성할지….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