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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재미는 있는데, 뒷맛은 씁쓸하다.
지난 17일 ‘더 킹 영원이 군주’ 첫 방이 막을 열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밋밋하다. 김은숙 작가의 차기작이라는 존재감과 ‘평행세계’라는 색다른 설정, 이민호와 김고은의 만남이 불러온 기대감이 너무 높았던 탓일까.
판타지와 역사를 버무린 대서사시의 특별함도,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을 뛰어넘는 차원 이동의 흥미로움도 아직까지는 와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김은숙 작가의 시대에 맞지 않는 감수성과 맥락에 맞지 않는 황제 이곤(이민호)의 행동이 작품의 흡입력을 떨어트린다는 평가가 많다.
가장 먼저 지적이 나오는 부분은 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대사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건너간 이림(이정진)은 장애인이 된 또 다른 자신을 목격하자마자 “이토록 미천하게 살았나”며 한탄한다. 이에 시청자들은 ‘장애인=미천하다’라는 공식을 성립시켜 장애인 비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비추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곤이 선수들과 조정하는 장면에서 나온 “남자는 적게 입고 많이 움직여야 해”라는 대사도 논란의 불씨가 됐다. 이는 남성을 향한 성희롱성 발언으로, 성별에 관계없이 성적 표현을 자제하자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 ‘남자는 ~해야해’라며 대상을 성별에 국한시키는 표현 또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정계 입문 7년 만에 최연소 여성 총리가 된 구서령(정은채)의 대사도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구서령은 첫 대사로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쳐줘서요”라고 말하거나, 젊고 잘생긴 황제 이곤과 스캔들로 국정 지지율을 높이는 등 총리로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어갔다. 특히 대사의 대부분이 총리의 능력과 상관없는 외적인 면에 치중됐다는 점도 드라마의 ‘시대착오적’ 요소로 지적됐다.
모든 면에서 빼어난 ‘황제 이곤’과 세상물정 모르는 ‘잘생긴 남자 캐릭터 이곤’의 이해할 수 없는 갭도 드라마 몰입을 힘들게 만들었다. ‘대한제국’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명석한 황제는 ‘대한민국’으로 넘어오자마자 순식간에 ‘철부지 XX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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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다이아몬드 단추를 팔아 마련한 돈을 명품 쇼핑, 호텔 스위트룸 숙박에 탕진하고, 자신이 다스려야 하는 국가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이 정태을(김고은)을 쫓아다니기 바쁘다. 정태을을 향한 일방적 감정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곤의 감정은 정태을의 신분증을 향해 혼잣말 하는 모습으로 간단하게 등장했다. 그런데 2화만에 “내가 자넬 내 황후로 맞이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뜬금 프로포즈에 “아 뭐지? 반만 미친 줄 알았는데 이제 다 미친 이 새끼는?”라며 어이없어하는 정태을의 대사는 정확하게 시청자의 마음을 반영한다. 시청자가 주인공의 마음을 채 따라잡지도 못했는데 감정을 고백하는 것도 아닌 ‘프로포즈’를 해버리니 설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받은 만큼 실망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1, 2화만으로 아직까지 드라마 전체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대중들이 아직은 지켜보자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점도 이 때문이다. 또 일부 부분적 문제에도 김은숙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의 기본적 퀄리티는 상당하다.
이제 3, 4부에서는 프롤로그 단계에서 벗어나 ‘평행세계’의 본격적 서사가 시작된다. ‘더 킹’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여전히 높은 만큼 회를 거듭할수록 “역시 김은숙이다”라는 평가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