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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작품 안에서 로맨스만 담당할 줄 알았다. 그녀가 박차오름에게 언니라고 불러도 된다고 말할 때 까지는….
‘미스 함무라비’에 속기사로 출연한 이엘리야는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순수한 사랑이 다른 이의 마음을 보듬고, 이들의 선의가 모였을 때 정의가 지켜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가 연기한 이도연은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도연과 정보왕의 사랑은 작품의 핵심 포인트였다. 이들의 진실된 마음, 솔직한 고백은 곧 사랑을 넘어 법을 다루는 법관들의 고백이었다. 단순한 메시지를 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이엘리야의 말은 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Q 사전제작 드라마는 처음이다.
5월 말에 촬영이 끝났으니까 4회가 방송될 때까지는 촬영 중이었어요. 저도 방송에 나오는 이도연이라는 인물을 처음 보다보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죠, 내가 표현한 이도연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관찰하면서 볼 수밖에 없었어요.
Q 브라운관을 통해 본 결과물은?
제가 고민했던 이상적인 인물로 표현돼 결과물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직장에서도 말이 많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만 존재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신비롭게 표현하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런 부분을 조명, 카메라구도 등 다양한 촬영기법을 이용해 이도연이라는 인물을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인물로 표현해주셨다는 느낌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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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 이미지와도 잘 맞는 캐릭터였다.
저는 ‘내가 인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타입’이에요. 어떤 인물을 연기하느냐에 따라 행동도 많이 변하죠. ‘미스 함무라비’ 촬영은 ‘작은 신의 아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어요. 겹치는 느낌을 보이면 안되겠다고 생각해 이도연은 대본을 읽었을 때 본능에 따르려고 했어요. 서툴고 부족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기준치에 부족할 수 있지만 제가 해낼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어요. ‘이엘리야가 하는 이도연’을 중점으로 생각을 거듭했죠.
Q 초반에는 ‘연애’에 치중한 인물이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반전’이 있더라.
정보왕(류덕환)과 이도연의 연애가 단지 멜로라인에 치중한건 아니에요. 속기사라는 직업이 법정 내에서 아주 중요하지만 보통 계약직이거든요. 직업적 한계 때문에 판사와 속기사의 만남은 있을 수 없다는 시선이 많죠. 그런 상황에서 정보왕이 순수한 마음으로 이도연을 좋아하게 되고, 두 사람이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하고 서로의 마음만으로 사랑을 이뤄가는 것은 ‘사람은 사람으로서 봐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지 사랑이 이뤄지고만 끝났다면 흥미롭지 않았을 거에요. 편견과 맞서고, 진실된 마음을 나누고, 그것이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메시지가 작품 안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어요. 멜로라인만으로만 기억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Q 키스신 앞 대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유혹인데 유혹아닌 작가의 ‘자기고백’처럼 들렸다.
많이 기대했어요. 노력했고. 키스신 자체보다 이도연이 이전까지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을 채 업무적인 정보전달만 해왔거든요. 일상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장면이 없었는데 이 신을 통해 인간적인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어떻게 표현해야 진짜 이도연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Q 솔직하고 순수한 사랑이 세속적인 정보왕을 각성시켰다.
정보왕이 이도연과의 연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부장판사 배곤대(이원종) 앞에서 이런 말을 하죠 “부장님 저 사귀는 사람이랑 같이 퇴근하는 중입니다”라고요. 윗사람들에게 엄청난 친화력을 가진 정보왕이 처음으로 상사에게 자기주장을 하며 맞서요. 그 신은 정말 찍으면서도 감동스러웠죠. (키스신보다도?)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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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장면은 곧 세상에 냉정하거나 세속적인 인물들의 마음을 모으는 계기로 발전한다.
그쵸. 선의를 가진 사람을 위해 함께 모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계란에 바위를 치더라도 함께라면 가능성이 있다는걸 보여주게 돼요. 함께라는 힘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도 드라마의 메시지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이도연과 정보왕의 멜로는 메시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역할도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Q 그 결과 작품이 던진 메시지는 ‘진심이 사람과 정의를 지킨다’고 생각했다.
저는 ‘미스 함무라비’의 가장 특별한 점은 메시지를 주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내가 속해있는 사회에,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과 다른 사람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주거든요. 제가 드라마를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메시지는 있지만, ‘드라마의 메시지’라고 했을 때는 질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Q 낮엔 속기사 밤엔 베일에 싸인 소설가, 작가의 모습을 투영한 캐릭터로 느껴진다.
판사님이 낮에는 일하시고 밤에는 글을 쓰셔서 그런게 아닐까요.(웃음) 본인이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한 부분이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작가님께서 각 인물에 조금씩 자신을 투영했구나, 투영할 수밖에 없었구나 생각했어요. ‘미스 함무라비’는 드라마지만 판사님께서 법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진짜 이야기를 한거잖아요. ‘서툴고 부족하지만 진짜가 들어있을 때 사람이 움직이게 된다’는 대사처럼 작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실제처럼 느껴졌다고 봐요.
Q 속기사이자 작가라는 직업의 백미는 ‘이야기의 문을 닫는다’는 점에 있었다.
속기사라는 직업은 판사들의 모든 것을 아우르고 볼 수 있어요. 지나간 법정까지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되짚어보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일반적인 인물보다 더 디테일하게 관찰할 수 있는 직업이기에 이도연이 지금까지 등장인물 모두를 관찰한 이야기를 ‘미스 함무라비’라는 극본으로 마무리하면서 작품이 완성된 것 같아요.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