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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설득 실패한 현대차=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경쟁당국 수장에 앉은 ‘재벌 저격수’ 김상조 위원장은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차그룹을 콕 집어 언급했다. 지난 3월 내 놓은 지배구조 개편안 역시 김 위원장의 숙제에 대한 현대차의 답안지 성격이 짙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현대모비스(012330)(7.0%), 현대차(4.0%), 현대제철(11.9%)의 지분을 보유하며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086280)의 지분율이 23.3%로 가장 많고 현대차와 기아차(000270)는 각각 1.8%, 1.7%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를 지렛대로 현대모비스가 16.0%의 지분을 보유한 현대차와 현대차가 33.9%의 지분을 가진 기아차 등 핵심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순환출자 고리다. 기아차는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16.9%나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찾은 해법은 현대모비스 지배회사 체제. 현대모비스에서 AS·모듈 사업부를 떼어내 현대글로비스로 넘기고 정 회장 부자(父子)가다른 계열사들이 보유한 존속 모비스의 지분을 사들이면 기존의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라는 순환출자 구조는 깨끗이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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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장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거부했다. 5월 말 개편 작업의 첫 단추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일주일 가량 앞두고 현대차그룹은 주총을 전격 취소했다.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발표한 후 두 달 동안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을 포함해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결국 무릎을 꿇은 셈이다. 정 부회장은 개편안을 거둬 들이면서 “시장과의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을 절감했다. 사업 경쟁력과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한때 엘리엇과의 표 대결에서도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글로벌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라스루이스까지 반대 입장을 내 놓자 표 대결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지분율은 48%에 달한다.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비토를 놓은 이유는 분할 및 합병 비율이다. 정확히는 정의선 부회장에게 너무 유리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존속 모비스와 분할 부문을 순자산 기준으로 79대21로 나누고 현대모비스의 분할 부문과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비율은 6대4로 산출했다. 엘리엇을 포함한 투자자들은 물론 자문사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당장 현대모비스의 분할 비율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이 많았다. 알짜 사업부인 AS·모듈 사업부의 가치를 너무 낮게 잡았다는 얘기다. 분할 모비스의 가치가 낮고 글로비스의 가치가 높을수록 23.3%에 달하는 글로비스 지분을 가진 정 부회장에게 유리하다. ISS는 이익 대비 기업 가치를 동종 기업들과 비교할 때 분할 모비스와 글로비스 간 합병 비율은 7대3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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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베일 쌓인 ‘플랜B’, 큰 틀 변화는 없을 듯=금융투자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기존의 지배구조 개편안의 기본 구조를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재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 기존 안대로 현대모비스를 분할 한 후 분할 모비스를 상장하는 방안이 처음 나온다. 기존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합병비율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문제는 대주주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는데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상장한 분할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시장가격은 ISS가 권고한 7대3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상장 후 합병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배구조 개편안이 나오기 전에 등장했던 지주사 시나리오도 다시 나온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가 현대글로비스가 아닌 현대차와 합병한 후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 한 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물론 기아차를 포함해 삼각 분할 후 각 투자회사를 합병하는 방안에 힘을 싣는다. 다만, 현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 등 금융계열사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금산분리 원칙 상 산업 지주회사가 금융계열사를 소유할 수 없다. 현대차의 연결 기준 매출액 중 현대캐피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달한다. 더군다나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던 ‘현대 어슈어런스’ 같은 금융 프로모션은 계열 금융회사가 아니고서는 힘들다.
기존 안에서 합병비율만 일부 조정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이를 보완한 게 현대모비스의 분할 기준을 새로 짜는 방안이다. 기존 안을 한 꺼풀 벗겨 내 보면 같은 사업부문이라도 무대가 국내인지, 해외인지에 따라 분할과 존속 여부가 달라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AS 사업부문을 분할 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겠다고 했지만, 같은 사업을 영위하는 해외 자회사는 여전히 존속 모비스에 남는다. 회사가 지배구조 개편의 명분으로 내세운 ‘역량의 집중’이 퇴색되는 부분이다. 시장에서는 “기업을 아는 사람이라면 회사를 이렇게 쪼개는 데 동의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따라서 기능적 사업부로 분할 기준을 새로 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국내 사업인지 해외 사업인지를 막론하고 특정 기능을 한 데 묶어 떼 내는 식이다. 기존에 존속 모비스에 남기기로 했던 핵심부품 사업부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도 관심사다. 지난 개편안 발표에서 현대모비스는 친환경차량(xEV) 부품과 관련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 측은 가치 평가를 잘 받지 못해서 함구했다고 애널리스트들에게 설명했다. xEV 모듈 분야에 대한 가치 평가와 더불어 해당 분야가 핵심부품으로 분류될지, 혹은 모듈 부분으로 갈지에 따라 분할비율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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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기다리기는 어렵다.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 놓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선, 내년 3월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등기임원 임기가 만료된다. 개편안을 발표하고, 각 회사의 주주총회까지 거치는 데는 대략 2달 가량 걸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개편안을 보완하겠다고 발표한 지 3개월이 지난 만큼 방법론에 있어서는 검토가 대부분 끝났을 것”이라면서 “문제는 시장 상황을 고려한 타이밍을 언제 잡느냐는 것인데, 결국에는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의 결단에 달려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