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부터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에 이어 ‘협상’까지. 올해에만 세 작품을 선보인 손예진이 “‘협상’ 세트장에 들어가는 것이 유독 힘들고 외로웠다”고 고백했다.
‘이원촬영’과 대부분 ‘클로즈업’ 샷으로 진행되는 현장에서, 매번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자세로 얼굴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트에서 유일하게 벗어나는 시간은 점심시간 뿐. 그는 촬영이 다 끝나야 나갈 수 있는 그곳에서 심리적인 압박을 많이 느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은 그를 ‘협상’의 최종 지점까지 성공적으로 달려갈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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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개봉한 ‘협상’(감독 이종석·제작 JK필름)‘은 태국에서 사상 최악의 인질극이 발생하고, 제한시간 내 인질범 민태구(현빈)를 멈추기 위해 위기 협상가 하채윤(손예진)이 일생일대의 협상을 시작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손예진은 ’협상‘에서 어떤 긴박한 상황 속에도 침착하고 냉철하게 사건을 해결해내는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 소속 협상가 하채윤 역을 맡았다.
손예진은 “협상과 여성 경찰관이라는 소재가 매력적이라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범죄 액션이나 스릴러에서 여배우가 경찰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고, 능동적인 캐릭터여서 꼭 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공무원 역을 해보는 게 처음이시죠?라고 물어보시기도 하더라.그만큼 새로운 인물로 느껴졌다.”
손예진이 분석한 하채윤은 ‘뜨거운 인간애를 가진 협상가’였다. 전문직으로서 직업적 사명감, 책임감을 지녔지만, 어느 순간 인간으로서 마음이 약해지는 무서운 지점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좀 더 입체적이고 공감 가는 캐릭터를 만들어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하채윤은 협상가라는 이성적인 직업을 가졌지만 인간적인 인물이다. 전문직 여성이 주는 이미지에서 너무 벗어나면 안된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전형적인 인물로 보여서도 안된다. 하채연이란 인물 그 시선으로 따라가야 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쳐졌음 했다. 처음 해보는 역할인데, 배우가 어설프면 스스로 너무 부끄러워지지 않나. 캐릭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무조건 정의만 외치는 사람은 매력 없다. 이종석 감독님 말씀이 원래 협상가는 인질범과 가깝다고 하더라. 인질범과 감정을 교감하면서, 알게 되면 알게 되는 부분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하니까, 인간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서 연기했다.”
영화는 ‘협상가’와 ‘인질범’의 실시간 대결을 그리며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오직 모니터만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맞서는 두 사람의 대치 상황은 일촉즉발 긴장감을 선사한다. 두 사람이 만나지 않고 모니터를 통해 서로를 보며 이원촬영으로 진행됐다. 게다가 클로즈업과 바스트샷으로 인물의 심리를 표현한다. 감정이 점점 올라가는 상황 속에서도 인물들의 대사로만 주고 받아야 하는 촬영방식은 배우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손예진은 “촬영을 하며 계속 자기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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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으로 촬영이 진행되고 그날 그날 세트장에 들어가서 촬영을 했다. 그 촬영을 마치고 가야하니까 그 상황이 진짜 같았다. 내가 민태구의 마음을 알아내야 하고, 실제 인질범을 구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트장에 들어가는 시간, 그 순간이 내 자신과의 싸움처럼 느껴져 힘들기도 했다. ”
“원래 연기라는게, 누가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지만 이 작품은 유독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홀로 해야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배우가 고민하고 고생할수록 관객들이 작품을 보기는 더 좋은 것 같다. 협상이라는 것도 결국 상대의 마음을 읽고, 원하는 걸 들어주는 인물이란 깨달음도 얻었다.”
‘협상’ 속 하채윤은 냉철한 경찰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질범 민태구의 숨겨진 진실을 듣고 갈등하는 감정적인 모습도 보이며 관객의 심리를 천천히 따라오게 만든다.
손예진은 “끝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아야 하는 건 채윤이죠.”라며 “인질범에게 ‘너의 어떤 이야기도 다 들어주겠다’는 모습과 ‘네가 어떤 행동을 해도 널 통제할 수 있’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게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흥행성과 연기력을 골고루 갖춘 30대 동갑내기 배우 손예진과 현빈이 ‘협상’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멜로가 아닌 ‘적’으로 대치하는 관계로 만나게 된 손예진은 “신기하고 놀라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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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 씨와 작품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심지어 이원촬영 방식으로 진행돼 리허설도 안하고 촬영했다. 어렵긴 했지만 덕분에 날것 그대로 잘 전달된 것 같다. 현빈 씨와 모니터로만 만나서 다음에 꼭 다른 작품에서 만나서 호흡을 맞추자는 얘기를 나눴다.”
“현빈씨의 연기를 스크린으로 보면서 정말 고민 많이 했구나를 느꼈다. 배우들은 이 사람이 어떤 지점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다 안다. 현빈 씨는 미세한 떨림, 제스처, 호흡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고민한 것 같다. 그래서 많이 놀라웠다. ‘변신에 성공했다’는 표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올해에만 세 작품을 선보인 손예진. ‘쟤 또 나와? 지겹다’ 이럴까봐 무섭다는 불안감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배우는 “결과를 생각하고 변신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 자체가 다른 것을 하는 걸 좋아한다”는 지론도 전했다. 그의 연기 원동력은 ‘변신’에 대한 갈망과 노력, 그리고 책임감에 있었다.
“작품이 쌓이고 연차가 늘어갈수록 책임감은 더 쌓여간다. 결과에 대한 책임감은 배우가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데, 점점 무겁게 쌓이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안정적인 작품을 선택해서, ‘저 번에 했던 것과 똑같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매번 변신하려 노력 한다기보다 매 작품에서 다른 캐릭터를 하는 게 좋다. 배우로서 진짜 몸부림치지 않으면 되지 않는데 그렇게 하고 싶다. ”
“계속 궁금증을 주는 배우. 뭔가를 기대하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배우가 내가 지향하는 바다. 다른 캐릭터로 또 다른 감동을 드리고 싶다. 관객분들에게 어느 지점에선 공감을 줄 수 있는 캐릭터로 느껴지고, 또 어느 지점에서는 감동을 줄 수 있는 배우로 계속 남고 싶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