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문득 내 얼굴이 변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어요. 점점 날카로워지는 눈빛이 느껴졌거든요. 모니터하면서 ‘저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닌 것 같은데’란 생각도 잠시, ‘내가 강찬기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란 생각에 기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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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재는 지난달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극본 박언희·연출 박경렬, 이하 ‘그녀말’)에서 재벌가에서 최고와 완벽만 허용하는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앵커 강찬기 역으로 열연했다. ‘그녀말’은 살기 위해 인생을 걸고 페이스오프급 성형수술을 감행했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고 만 여자 지은한(남상미)이 조각난 기억의 퍼즐들을 맞추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사회성이 결여된 소시오패스적 인격 장애를 지닌 강찬기로 열연한 조현재는 선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악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면모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연기 호평을 이끌어냈다. 조현재에게 강찬기는 마음으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강찬기에 대해 “인간 조현재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납득할 수 없는 극혐 캐릭터”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찬기의 잘못된 사랑 표현 방식의 주요 포인트를 캐치해 조현재만의 악역 컬러를 새롭게 보여줄 수 있었다.
“전형적인 악역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키를 지닌 인물이죠. 강찬기는 겉은 멀쩡한데, 내면은 인격장애를 지니고 있어요. 겉으로는 너무나 완벽한 앵커잖아요. 하지만 실제론 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착각과 우월인식에 빠져서 살아가는 인물이라, 항상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유년기 내내 엘리트 교육을 받고 살아서, 뭐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런 성장과정에서 오는 인격장애가 현재의 강찬기를 만들었어요. ”
“흔히 알고 있는 악을 표현하기 보다는 섬세하게 자기 우월의식을 표현하는 인물이란 점에 주목했어요. 강찬기의 눈빛이 변하는 지점이 있어요. 그런 포인트를 캐치하려고 노력했죠. 지은한을 사랑한 건 맞아요. 지은한을 사랑함에서 있어서는 처음부터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그게 잘못된 사랑이고, 결국 인격장애라는 거죠.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히 조현재는 “‘그녀말’이 다루고 있는 가정폭력은 단순히 한 개인의 병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다”고 짚었다. 배우 개인적인 연기 변신 외에도 드라마의 기획 의도에 공감 한 것.
“그 동안 공중파 드라마에서 쉽게 다루기 힘든 소재와 그런 사회적 문제를 미스터리 멜로란 장르 안에서 다시 한 번 짚어본다는 점에서 의미 깊었어요. 현장에서는 늘 죄책감이 있었어요. 조현재라는 사람으로서는 강찬기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니까. 저도 애인폭행, 폭행 남편 사례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미스터리 멜로란 장르 안에서 강찬기의 행동을 받아들이니까 이해가 갔어요.”
‘그녀말’은 조현재 연기 인생의 2막을 다시 열어 준 작품이다. 20대 때는 선한 인상 때문에 역할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 “20대엔 그 흔한 반항아 연기도 한번 못해봤다”던 조현재는 “‘그런 얼굴로 , 그런 선한 눈망울로 악역을 어떻게 하냐’는 말을 항상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이번 강찬기 역할을 통해서 그런 부분에서의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됐다. 대중들의 선입견을 스스로 깨고 나온 점에서 더욱 의미 깊다.
“다르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색다른 필모그래피에 대한 목마름이 깊었어요.어렸을 때 선해보이는 인상으로 제약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더더욱 강기찬과 같은 역할을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배우로서 이런 성격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기쁨, 그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저처럼 생긴 사람이 악인을 연기하는 것이 더 섬뜩할 수 있어요. 범죄자라는 것이 꼭 외모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소름 끼친다’ ‘연기 좋다’는 사람이 많을수록 배우는 행복하잖아요. 좋다는 평에 객관적으로 의심도 하죠. ‘진짜 좋았나’ 하고. ”
2000년 포카리스웨트 CF 모델로 데뷔한 조현재는 선한 인상과 훈훈한 외모로 스타 탄생을 알렸다. 이후 MBC ‘러브레터’로 연기자의 길로 들어 선 후, ‘별의소리’ ‘햇빛 쏟아지다’ ‘구미호 외전’ ‘용팔이’ 등을 통해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이후 3년간의 공백기 후 선택한 작품이 ‘그녀 말’이다. 공백기는 조현재의 생각도 더 유연하게 열리게 되는 계기가 됐다.
“본의 아니게 시간이 흘러갔던 것 같아요. 비슷한 역할을 계속 하기에는 다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룬 것도 있다. 조금 더 좋은 모습, 다른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나야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어요. 공백기가 나를 다르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좀 더 생각이 열렸다고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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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말’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는 이것보다 더 잔혹한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사실 강찬기가 정말 치사하고 치졸하고 파렴치한 인간이잖아요. 이런 역할을 함으로써 또 다른 캐릭터가 열릴 것 같아요.”
조현재는 ‘강찬기’란 옷을 입고 인생 캐릭터를 만난 걸까. 그는 “맛있는 요리는 손님들이 선택해주는 것처럼 이번 캐릭터에 대한 평가도 시청자들의 몫인 것 같다”는 답을 남겼다. 한가지 분명한 건 기분 나쁠 정도로 섬뜩한 ‘강찬기’란 인물에 대해 매일 매일 생각했던 것. 온통 머릿 속은 ‘강찬기’ 뿐이었다. 그 노력은 고스란히 연기에 투영됐다. 그의 표정, 눈빛은 점점 야비한 강찬기에 가까워졌다. 이젠, 증오와 사랑이 함께 한 ‘갓창기’를 떠나보내는 과정 중에 있다는 조현재는 “어느 누군가에는 최고의 배우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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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계속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으면, 인상도 그렇게 변하잖아요. 중반부터 스스로 제 얼굴이 사납고 날카롭다고 느껴졌어요. 야비한 면도 제 얼굴에서 발견하게 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설득력 있게 연기를 했다’는 평들에 감사했어요. ‘선한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런 눈으로 그럴 수 있어?’란 말도 들었어요. 물론 칭찬이죠. 그런데 기분이 묘하드라구요. 저만 특별한 노력을 했다기 보단, 모든 배우들이 다 노력하지 않나요. 그냥 저는 매일 매일 기분 나쁠 정도로 강찬기에 대해 생각을 했어요. 물론 인간 조현재가 바라보는 강찬기는 너무 너무 싫었지만요. 그런 노력으로 하니까 좋게 봐주시지 않았을까. “
“아나운서 역할을 위해 한 분이 아닌 여러 아나운서 분들 찾아다녔어요. 어떤 한 명의 아나운서를 똑같이 따라 할 순 없어요. 따라하기 보단 제 것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런 부분 역시 제가 크게 노력했다하라도 화면에서 보기엔 작은 부분인데, 그게 크게 느껴지는 시청자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그게 좋은 반응으로 이어지는거겠죠. ‘음식이 맛있다’ 혹은 ‘맛없다’ 에 대한 평가는 요리사 보단 손님이 하는 거잖아요. 맛있는 요리는 결국 손님들이 선택해주는 것처럼. 제 연기가 누군가에겐 최고의 연기로 느껴질 수 있음 좋겠어요.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