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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칼럼] '트랩' 들었다 놨다, 빠져나오지 못할 덫에 물려버렸다

  • 최상진 기자
  • 2019-02-25 12:02:10
  • TV·방송
[최상진칼럼] '트랩' 들었다 놨다, 빠져나오지 못할 덫에 물려버렸다

마지막회를 앞둔 ‘트랩’이 종잡을 수 없는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새드 아니면 해피’ 양분화된 드라마의 공식을 깨버리고 끝까지 영화의 호흡을 구사하며 시청자를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이야기는 인간사냥꾼의 덫에 걸려 아내와 아들을 잃은 국민앵커의 범인 추적기로 출발했다. 2012년 SBS에서 방송된 ‘추적자:더 체이서’와 비슷한 구조라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하나의 줄기를 두고 가지들을 파생시킨 듯 보이지만, ‘트랩’은 하나의 뿌리를 두고 여러 줄기를 뻗어내면서 매회 이야기의 중심을 이동시켰다. 6회까지 흐름은 사건과 액션, 추리, 반전으로 거듭 전환됐다.

[최상진칼럼] '트랩' 들었다 놨다, 빠져나오지 못할 덫에 물려버렸다
OCN ‘트랩’ 홈페이지

▲ ‘드라마틱 시네마’ 생소한 장르의 정체성

시선 전환의 중심은 ‘관계’다. 굳건했던 믿음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누가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조력자가 배신자가 되고, 거대해 보이던 적이 일개 하수인이 되고, 반대편이었던 인물과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리고 피해자였던 강우현(이서진)은 가해자로 뒤바뀌며 흐름은 절정을 맞았다.

24일 방송된 6회에서는 사건 해결에 대한 결정적 힌트를 던졌다. 강우현이 아내와 자식을 희생시키며 정치권에 진출했고, 고동국(성동일) 형사는 보이지 않는 1㎜를 찾아냈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표정’을 검색한 흔적은 고동국이 강우현의 밑그림을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그 뒤에 있는 사냥꾼 집단의 실체까지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시청자들은 결말에 대한 각종 추측을 쏟아내고 있다. 절대 악을 처벌하려는 강우현의 큰 그림일수도, 사이코패스의 경험치 습득일수도, 자신에게 상처입힌 그들을 향한 복수전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는 ‘강우현이 왜 사냥꾼 집단의 표적이 되었는지’가 결말을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트랩’은 결말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힌트인 ‘기획의도’ 자체가 없다. 홈페이지와 제작발표회 자료에서도 작품에 대한 기획의도는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이들이 진실 혹은 거짓을 둘러싼 긴장감으로 하드보일드 추적 스릴러의 진수를 선사한다’가 전부다. 권선징악과 사회정의 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여느 드라마와 달리 긴장감과 추적, 스릴러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강우현의 목적, 고동국의 진실 추적, 사냥꾼들의 진실이 시청자에게 익숙한 형태로 끝맺지 않을 거라고 예고하는 것과 같다.

OCN이 내세운 ‘드라마틱 시네마’라는 생소한 장르의 정체성은 영화의 시나리오를 드라마로 확장한 것에서 더 나아가 ‘짧고 빠른 전개를 기반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린다’고 정의해도 될 듯 하다.

[최상진칼럼] '트랩' 들었다 놨다, 빠져나오지 못할 덫에 물려버렸다
OCN ‘트랩’ 홈페이지

▲ 권력·자본·언론의 결합, 왜곡된 사회가 주는 잔인함 그 이상의 잔혹성

작품은 권력, 자본, 언론이 악(惡)으로 결합했을 때 얼마나 사회를 왜곡시키고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 있는지 말한다. 이미 보이지 않는 힘에 휘둘렸던 한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인간사냥과 이를 ‘보이는 것’으로 포장해 진실을 가려버리는 행태를 통해 고발한다. 한번 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언론의 마녀사냥에서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살인과 폭력 사냥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과 사건에 대한 왜곡된 시선, 이를 포장해 전달하는 언론이 만들어내는 괴물, 그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눈을 가린 채 세상을 봐야 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피보다 더 잔인한 왜곡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눈을 뜨라’ 말한다.

강우현의 빅피처는 시청자가 원하는 ‘정의를 위한 사이코패스의 덫’일 수도, ‘욕망을 위해 세운 철저한 계산’일수도, ‘권력과 자본의 힘에 굴복한 이의 새로운 공생’으로 결말지어질 수도 있다. 물론 이조차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 그림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게 만든 작가의 놀라운 필력은 얄밉기까지 하다.

아무것도 믿지 못하겠다. 보이는 잔인함보다 보이지 않는 잔혹함이 무섭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마치 굽지 않은 목살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날것의 느낌이다. 이번 주 토요일, 마지막회가 끝난 후에도 이 ‘날것의 느낌’이 생생하길 막장의 품격들 사이에서 절실히 기대하고 있다.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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