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의 첫 연출작 ‘미성년’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신예 박세진은 첫 영화 데뷔가 아직도 믿기지 않은 눈치였다. “살면서 이런 기회를 얻을거라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또 다른 주인공 김혜준과 함께 500:1의 경쟁률을 뚫고 ‘미성년’에 합류하게 된 박세진은 김윤석 감독이 원한 배우였다. 김윤석 감독이 신인 배우를 선택의 기준은 무언가의 기교나 기술로서 연기를 매끄럽게 흉내내는 게 아니라 서툴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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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은 오디션 대본을 받고 단숨에 읽었다고 했다. 감명 깊게 읽어서 신인배우를 뽑는다면, ‘정말 내가 된다면 너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다고 했다. 오디션이 거듭될수록 마음은 더 간절해졌다. 꼭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인물이 큰 사건을 따라가는 영화보다는 인물 개인이 겪은 한 사건을 쭉 따라가면서 인물이 극복해가는 그런 과정의 영화들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품이 그랬어요. 그리고 시나리오를 보면 윤아라는 아이는 처음에는 당돌하기도 하고 담담한 모습들이 많지만, 점점 그 안의 여린 모습들이 조금씩 드러나는 아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껍질을 다 벗긴 윤아의 모습 속에는 그 나이의 여고생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박세진은 철없는 엄마(김소진)와 단 둘이 살며, 엄마가 동급생 주리(김혜준)의 아빠 대원(김윤석)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뒤 나름의 방법으로 이 난관을 해결하고자 한다. 주리가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예의 바르게 자란 케이스라면, 윤아는 좀 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벽이 두꺼운 아이이다. 박세진은 윤아의 마음 속엔 자신의 환경이나 부모님에 대한 분노 등이 쌓여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윤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고, 속마음이 많이 궁금했어요. 어느 순간 어린 윤아가 혼자 집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됐어요. 기다리는 입장에선 굉장히 꿋꿋하고 용감하게 기다리는 거지만, 제 3자가 보는 입장에선 굉장히 쓸쓸하고 외로워보였을 것 같아요. 본인은 모르는 사이에 깊숙한 외로움이 깊이 쌓여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그런 게 와 닿았어요.”
외로운 윤아를 이해하는 과정은 박세진에게 특별한 속앓이 시간을 선사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윤아의 복잡한 마음을 촬영을 끝내고 귀가 후 바로 풀어버리면, 영화 촬영장에서 제대로 감정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도 생겼다. 계속 참고 또 참아내는 속앓이가 이어지는 나날이었다.
“처음 경험해본 감정이었어요. ‘이 마음 고생이 뭘까’란 생각도 들었고, 저의 이런 감정이 더 닮았다는 말을 해주더라구요. ”
박세진은 그렇게 윤아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 윤아에게 엄마는 이해 불가능한 엄마였다. “처음부터 윤아의 입장에서 이해가 안되는 엄마였어요. 답답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엄마였어요.”하지만 “윤아로서 최선을 다해 엄마를 이해한 상태에서는 분노가 사그라들고 엄마에게 화를 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음을 고백했다.
“마지막 라면 먹는 씬 전까지 엄마에 대한 분노가 큰 거라고 생각했어요. 라면 먹는 씬을 많이들 좋다고 해주셔도 감사해요. 제 관점이 아니라 엄마 관점에서 좀 더 바라보니 그 대사가 나왔던 것 같아요.”
‘미성년’을 통해서 엄청난 공부를 하게 됐다는 박세진. 그는 박세진은 “감정 씬의 경우, 제 속이 얼마나 힘들지 먼저 알고 계셨다”며 감독으로서 배우와의 교감을 놓치지 않는 김윤석 감독의 섬세함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연기 공부를 정말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연기자가 가져야할 마음 가짐이라던지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것인지 정말 잘 배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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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못한 어른들이 있다는 걸 마주하게 됐을 때, 유진은 나름의 행동책을 강구하게 된다. 유진의 모습은 박세진에게도 많은 변화를 일깨워줬다. 어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는 박세진은 “상대방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어른과 가까워지는 것 아닐까”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나 싶어요. ‘어른’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보다 성숙하게 보고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른과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요. 이런 노력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뒤에도 아니 눈을 감기 전까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겠죠.”
2016년 웹드라마 ‘마이 런 웨이’로 데뷔한 박세진은 친언니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슈퍼모델 대회에 나가게 됐다. 언니는 프로듀서를 자칭하며, 동생이 모델에 이어 배우의 길에 들어선 걸 행복한 모습으로 바라본단다. 박세진은 “언니가 권유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갔을거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온 아이였어요. 치열하게 꿈을 생각해보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욱 지금의 일들이 믿기지 않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연기를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과 학교에 같이 있고 접한 부분이 많다 보니 저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3년차이긴 한데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이 일을 한 게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 해 봤어요”
외모적으로 도화지 같은 이미지를 지닌 박세진은 영화 속 모습과 실제 모습이 너무 달라 기자를 놀라게 한 배우 중에 한 명이다. 영화 속에서 마주한 외로운 눈매를 지닌 날 것의 거친 ‘윤아’는 현실에 없었다. 수줍고 부드러운 모습의 배우 박세진이 말갛게 웃고 있었을 뿐. 박세진이 좋아하는 배우는 배두나였다. 배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배두나는 소탈하지만 감춰지지 않는 ‘멋’이 있는 배우”이다. 그렇게 그는 “사람 자체가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보였다.
“사람이 가진 멋 꾸미지 않는 멋이라고 할까요. 그런 매력이 저에게도 있었음 해요. 외모적으로 얼굴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굉장히 바뀐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이 저에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든 드라마든 좀 더 많이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
“이 영화 작업 자체가 하나의 목표를 두고 여러 사람들이 밤낮 없이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이죠. 게다가 영화는 촬영부터 개봉시기까지 계속 함께 서포트 한다는 점이 좋아요. 함께 고생해서 만들어간다는 게 정말 값진 일이란 걸 이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미성년’과 함께 한 시간이 저를 조금이나마 저를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