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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역 1번 출입구 지하. 많은 사람이 오가는 개찰구 앞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크게 걸렸습니다. 신작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홍보 포스터입니다. 올해 서거 10주기를 맞아 노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영화가 또 한편 만들어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상영관을 찾기는 몹시 힘듭니다.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때마침 상륙했기 때문입니다. 개봉 첫날에만 134만명을 동원한 역대급 대작입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려는 사람들은 그저 ‘상영관 찾아 삼만리’입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27일 저녁 신촌의 한 영화관에서 간신히 노 전 대통령 앞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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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0주기…다시 돌아오는 ‘노무현의 계절’
“저는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제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제 자신이 비록 정치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신념이 이루어진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2003년 10월 13일, 노무현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앞서 대중에 공개됐던 노 전 대통령 관련 작품들처럼 이번 신작도 스크린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노 전 대통령에 얽힌 각자의 추억을 소환해 줍니다. 추억의 색깔은 모두 다를 겁니다. 그리움이나 고마움, 미안함일 수 도 있고, 10년이 지나도 여전한 거부감, 반감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감정의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친노’ ‘비노’ ‘반노’ 구분 없이 모두를 상념에 잠기게 하는 영화인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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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는 아니지만 …노무현과 인연 많은 이낙연
아마 이 총리도 관람 내내 생각이 많았을 겁니다. 이 총리는 여의도에서 ‘친노’로 분류되는 인물이 아닙니다. ‘친문’도 아닙니다. ‘계파색이 옅다’가 그에 대한 평가입니다. 하지만 이 총리는 노 전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선후보의 대변인’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의 대변인’이란 수식어가 대표적입니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맞붙었던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대선후보 대변인으로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했고, 드라마 같았던 승리 이후에도 공식 취임 전까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의 대변인직을 맡은 바 있습니다. 또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 작성에도 참여했습니다. 이 총리는 이 경력들을 자주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 총리는 2003년 11월 ‘친노’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갈 때 민주당 잔류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 3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합심해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처리하던 날엔 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당시 탄핵안 찬성은 193표, 반대는 단 2표였습니다.
◇“노무현이 남긴 희망, 고통, 각성 전해준 영화”
이 총리는 영화가 끝난 직후 영화 관람을 함께 한 사람들과 감상평을 나눌 겸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으로서 영화에도 직접 출연한 일반인, 영화 제작자, 노무현재단 장학생과 재단 직원 등이 이날 늦은 밤까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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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는 탄핵 반대표를 던진 이유를 이 자리에서 설명했습니다. 이 총리는 “특별한 철학이라기 보다는 정치가 그럴 것까진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어제까지 동지였는데 갈라졌단 이유로 오늘부터 바로 저주를 퍼붓는 정치판의 행태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는 의미였습니다.
또 이 총리는 연장선 상에서 “(당시) 열린우리당 창당 때 잘 되길 바란다고 하고, 이해찬 총리 지명 때 잘 된 인사라고 말했더니 (민주)당에서 회색분자라고 했다”고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영화 감상평으로는 “노무현 대통령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복합적인 느낌을 준다”며 “그 복합성을 이 영화가 그대로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복합성의 요소로 ▲노 전 대통령이 보통사람들에게 줬던 여러 ‘희망’ ▲숱한 조롱과 경멸, 왜곡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에서 오는 ‘고통’ ▲민주주의는 한번 얻으면 당연히 우리 것이 되는 줄 알지만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각성’을 꼽았습니다.
이날 영화 뒤풀이는 꽤 길었습니다. 1시간 40분 가까이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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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 ‘총(總)’자와 총선의 ‘총(總)’자는 같다?
그런데 이날 이 총리의 영화 관람은 순수한 여가 생활보다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큰 행보였습니다. 차기 대선까지는 한참 시간이 남긴 했지만 구도상으로는 현재 지지율 1위 여권 대선주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간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총리는 지난 3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수행기자단 간담회 중 향후 선거 출마와 관련 된 질문에 ‘황홀한 덫’이란 표현을 사용해 세간의 주목을 한 차례 받았습니다. ‘선거가 아니라 취재진의 질문이 황홀한 덫이란 의미였다’고 뒤늦게 해명을 하긴 했지만, 이 총리는 당시 충칭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와 회동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25일 전북 완주의 수소 경제 현장 시찰 중 “총선 차출설이 나오는데…”라는 질문이 다시 나오자 “제가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총리의 ‘총’자와 총선의 ‘총’자가 같은 거죠?”라는 동문서답으로 즉답을 피해갔습니다.
물론 현직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을 잘 보필하는 책무를 맡고 있는 만큼 “현재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게 이 총리의 공식 입장입니다. 하지만 총선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면서 이 총리의 향후 거취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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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 다음 달 23일엔 봉하마을행…10주기 추도
이 총리는 다음 달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추도식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노무현재단의 요청에 따른 참석이 아닌 총리의 직접 결정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총리는 지난해 9기 추도식엔 공식 일정 때문에 봉하마을을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개인 SNS에 “부족한 제가 노 대통령님의 후보 및 당선인 시절 대변인으로 일했고, 대통령 취임사를 정리했던 것은 과분한 행운이었다”며 노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지만 범여권에 ‘노무현의 그림자’는 어떤 식으로든 여전히 크고 짙습니다. 특히 다음 달 서거 10주기와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친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습니다. ‘친노’ 그리고 ‘친노’와 자연스레 연결되는‘친문’ 계열 정치인들은 대놓고 10년 정권, 20년 정권 창출을 외치고 있습니다. ‘친노’가 아니었던, 그리고 ‘친문’이 아닌 사람들에겐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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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의도는 여야 할 것 없이 아주 난장판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5월이 옵니다. 총리 취임 이후 처음 봉하마을을 찾았을 당시 ‘당신을 사랑하는 못난 이낙연’이라는 글을 남겼던 총리가 봉하마을을 다시 찾게 된다면 이번엔 과연 어떤 내용의 글을 방명록에 남길까요./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