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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는 11일 “동학농민혁명은 사람을 하늘처럼 받드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의로운 혁명”이라며 “2016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속된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 된 제1회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 참석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외세와 부패정치에 맞섰던 민중 항쟁이었으나 해방 이후까지도 폭도의 반란 등으로 매도됐었다.
명칭 역시 오랫동안 ‘동학란’ 등 지배 권력층의 관점에서 불리며 평가 절하됐고, 4·19혁명 이후에도 ‘동학혁명’ ‘동학농민운동’ ‘갑오농민혁명’ 등으로 뒤섞여 불리다가 2004년 국회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이란 공식 명칭을 마침내 얻었다.
또 올 2월 정부가 처음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면서 올해부터 공식적으로 기념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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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는 먼저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목숨을 걸고 일어나셨던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농민 선열들의 명복을 빈다”며 “사람을 하늘처럼 받드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의로운 혁명이 125년 만에 비로소 합당한 인정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이 첫 기념식인 만큼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총리는 “동학농민혁명은 우리의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민중항쟁”이라며 “내용에서도, 규모에서도 서유럽의 근대혁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 총리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우리나라 최초의 반봉건 민주주의 운동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개혁 운동 ▲우리나라 최초의 반외세 민족주의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배 세력과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를 없애고 양반과 상민, 상전과 노비,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 했다”며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청상과부의 재혼을 인정하며, 토지를 균등하게 분작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이 총리는 “동학 농민군은 경복궁을 무단 점거한 채 국정을 농단하고 이권을 차지하는 일본을 몰아내려 했다”며 “한양으로 진격하던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일본군 연합군에게 패배했지만, 그때 불붙은 민족의식은 일제강점기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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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는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은 10년 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계승됐다”며 “해방 이후의 4.19혁명도, 5.18민주화운동도, 6월 항쟁도 동학정신에 뿌리를 두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2016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속된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었다”면서 125년 전 민중 항쟁 정신이 역사의 흐름을 타고 오늘날까지 계승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학사상과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의 공통점을 꼽기도 했다. 그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동학사상은 민주주의의 근본철학”이라며 “문재인 정부도 ‘사람이 먼저’라는 믿음으로 모든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리는 “동학농민혁명 이후 계속된 국민의 투쟁과 희생으로 이룬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과정에 국민이 동참해 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하면서 기념사를 마무리 했다.
한편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인 5월 11일은 황토현 전승일에 맞춰 지정됐다. 황토현 전승일은 1894년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황토현 일대에서 최초로 전투를 벌여 동학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날이다.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군과 격돌해 최초로 큰 승리를 거둔 날로, 이날을 계기로 농민군의 혁명 열기가 크게 고양됐고,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