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차갑지만 속은 욕망의 들끓음을 갖고 있는 인물, 그렇다고 자신의 바닥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동료의 살인 은폐를 눈치챈 라이벌 형사 ‘민태’를 완벽하게 소화한 유재명은 “악당을 쫓고 사건을 해결하면서 시원한 해소감을 주는 영화는 많은데, 그와는 달리 너무도 처절한 감정의 밑바닥이 궁금했어요.”라고 말하며, 작품에 흥미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26일 개봉한 영화 ‘비스트’는 살인마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은폐하는 형사 한수(이성민 분)와 이를 눈치 챈 라이벌 형사 민태(유재명 분)의 모습을 그린다. 이정호 감독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른 두 인물의 감정 변화를 주목해달라”고 감상 포인트를 밝힌 바 있다.
보통 시나리오를 보면 해석 가능하고 이해 가능한 지점이 있다. 배우는 그 지점을 간파해 자신만의 연기란 재료로 재미로 끌어 낼 부분을 찾아낸다. 하지만 ‘비스트’는 달랐다. 그렇기에 유재명은 “이번 영화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고 말했다. 어려움은 또 다른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유재명은 “이런 막막함 속에 재미를 느꼈다” 천생 배우의 기질을 보인 것.
“형사들의 애환, 유머, 인간적인 모습들을 철저하게 배제한 작품이죠. 극한까지 상황을 밀어붙이니까 ‘끝은 어디일까’ 가늠할 수 없더라. 작품이 어렵다기보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고, 기본적인 서사인 듯하면서 풀어가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새롭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칙을 최우선으로 하는 강력반 형사 민태는 2인자로서 느끼는 좌절감을 가슴에 품고 있다. 함께한 동료를 ‘동료’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존재로 받아들인다. 점점 구렁으로 빠지는 한수와 이를 냉철하게 재촉하는 민태의 모습은 시지프스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유재명은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두 남자의 얘기”로 설명했다.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시지프스 신화가 떠오르죠. 전혀 다른 한수와 민태, 한때 동지였던 두 남자가 왜 이렇게 됐을까. 어찌보면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이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닮아있죠. 그런 양면적인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 작품이라고 봤다. 저는 민태의 전사나 동기를 눈빛, 태도, 호흡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
민태와 한수의 팽팽한 심리전을 지켜본 관객이라면 ‘왜’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기존 형사영화에서는 쉽게 다루지 않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유재명은 민태의 ‘소통불능’을 중요한 포인트로 지적했다. 그는 “‘비스트’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며 “‘짐승 같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단, ‘난 걔가 싫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소통하지 못하는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계속해서 교감하지 못하고, 누구와도 관계 맺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시키는 인물이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목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마와 거래를 하는 이들을 말리지 않고 옥죄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만연한 모습이다. 그게 짐승 같지 않을까. ”
그런 점에서 민태가 보인 마지막 표정은 가히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유재명은 “자신 안의 짐승의 모습을 직시한 모습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반성이나 회상의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다”며 다층적인 장면에 대해 기대감을 갖게 했다.
유재명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비밀의 숲’, ‘라이프’, ‘자백’에 이어 영화 ‘명당’, ‘돈’, ‘악인전’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이번 작품으로 첫 상업영화 주인공을 거머쥐었다.
주인공이라서 특별한 건 없었다. 다만 그는“작품이 왔을 때 그 작품이 매력적이라면 누구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목표이다“고 말했다.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괴물이 된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하는 이라면 여러 생각들을 안고 갈 영화이다. 그는 영화를 보며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이를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보람 있을 것 같다“고 영화의 의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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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