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존 윅 3편을 봤습니다. 그리고 한 이틀 정도 키아누 리브스가 바이크 타는 영상을 샅샅이 검색하는 후유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1, 2편도 멋있었지만 3편의 바이크 추격전은 최고였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며 바이크로 쫓아오는 적에게 총을 겨누는 그 장면은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노벨멋짐상 감이었습니다.
| 바이크영화(아님) 존 윅 3의 한 장면. /사진제공=제이앤씨미디어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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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키아누 리브스도 바이크 좋아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번에 존윅 덕질을 통해 새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리브스가 바이크를 탄 지도 이미 30여년, 무려 1987년도부터라고 합니다. 20대 초반이지만 현재와 거의 동일한 외모였던 그 당시 독일 뮌헨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어쩌다 만난 여성 엔듀로 라이더가 그에게 바이크 타는 법을 가르쳐줬다고 하더군요. 이후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산 바이크가 가와사키의 KLR600이라고 합니다.
| 가와사키 KLR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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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아누 리브스 뱀파이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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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리브스는 주로 클래식 바이크과 할리 데이비슨을 즐겨 탄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로 들인 바이크는 노튼의 ‘코만도’로 아직까지 소장하고 있다네요. 30년 전 타던 바이크까지 갖고 있을 정도면 지금 그의 차고에는 매우 많은 바이크가 저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0년대 초반 개봉한 ‘매트릭스2-리로디드’에서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 이 분은 그 장면을 찍기 위해 바이크를 배웠다고 합니다)가 타고 등장했던 녹색 두카티 998도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직접 인수했다고 합니다. 정말 부러운 인생입니다.
구글에 ‘KEANU REEVES MOTORCYCLE’로 검색하시면 리브스가 헬멧 들고 LA 부자동네 어딘가를 슬렁슬렁 걸어다니는 모습, 노튼이나 할리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미 4만5,000장 정도 본 것 같네요.
| 딱 이런 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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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스는 이밖에도 체인리액션, 아이다호 등의 영화에서 바이크를 타고 등장합니다. 본인이 워낙 바이크를 좋아하다 보니 새 영화를 찍기에 앞서 제작사 측에서 계약서에 ‘촬영 기간에 바이크를 타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우기도 했다는데, 그래도 탔다고 합니다(…). “바이크를 타지 않으면 우울해지고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면서요.
바이크를 타다 보면, 그리고 경제력이 되면 자연스레 커스텀 바이크에 관심을 갖게 되기 마련입니다. 리브스도 그랬습니다. 2007년에 본인이 타던 할리 데이비슨 ‘다이나 와이드 글라이드(2017년 단종)’의 커스텀을 맡겼는데, 그 결과물이 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이 커스텀 장인은 당시에도 이미 바이크 명인으로 유명했던 가드 홀린저. 리브스는 홀린저에게 공동 창업을 제안했고 처음에는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허당처럼 생긴 얼굴과 달리 의외로 끈질긴(매력포인트) 리브스였습니다. “우린 어차피 모두 죽을 텐데 그 전에 뭔가 멋있는 걸 만들어보자”는 그의 말은 홀린저를 흔들었습니다. 둘은 2011년 캘리포니아에서 ‘아치(Arch) 모터사이클’을 세웁니다.
아치 모터사이클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돈이 많아야 살 수 있는 최고급 수제 바이크 제조사입니다. 물론 주요 부품까지 전부 다 새로 만들 수는 없으니 세계 최고의 부품 제조사들과 협업합니다. 엔진은 미국 위스콘신의 S&S, 서스펜션은 올린즈, 탄소섬유 휠은 남아공의 BST, 타이어는 미쉐린, 신호계와 미러 등은 이탈리아의 리조마, 머플러는 요시무라와 협력했다네요.
창립 3년 후인 2014년 첫 제품인 ‘KRGT-1’을 출시했는데, 이 모델이 바로 홀린저가 커스텀한 리브스의 할리 데이비슨을 프로토타입 삼아 만든 모델입니다. 아메리칸 크루저의 느낌이 강하죠.
| 2014년 공개된 아치 모터사이클의 첫 모델, KRGT-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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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델은 조금 허술한 느낌이 드는데, 2018년식 KRGT-1은 또 다른 느낌입니다.
| 2018년식 KRGT-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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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스퀘어 스페이스’라는 기업의 광고에 KRGT-1을 타고 등장했던 키아누 리브스. 혼자 이렇게까지 멋있을 일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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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KRGT-1s’와 ‘메소드 143’을 추가로 선보였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크루저보다는 좀더 스포츠 바이크에 가까운 모델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스펙은 당연히 어마무시하게 화려합니다. 메소드 143의 경우 2,343㏄ V트윈 엔진을 장착해 170마력을 발휘하며, 섀시와 휠은 탄소섬유로 제작됐습니다. 여기에 모토GP용 바이크처럼 100% 티타늄 배기관을 달았습니다. 알루미늄 연료탱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최고급 가죽 시트 등 고급 소재와 부품으로 23대만 한정 제작했으며 가격은 7만8,000달러(9,095만원)부터라고 합니다.
| 아치 모터사이클의 최신 모델, 메소드 143. /사진=아치모터사이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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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소드 143. /사진=아치모터사이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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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소드 143의 연료탱크는 알루미늄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 만들었습니다. 덕후들이란...(절레절레) /사진=아치모터사이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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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포크’ 바이크기 때문에 오너가 원하는 대로 주문도 가능합니다. 전세계 어디로든 배송도 됩니다. 물론 배송료와 국내 환경검사 비용도 감안해야겠지만요. 아래는 키아누 리브스가 직접 자신의 바이크 라이프와 아치 모터사이클에 대해 설명하는 GQ 잡지 인터뷰 영상(
안 보이시는 분은 링크 클릭)입니다. 6분 대에 KRGT-1의 시동을 켜는 장면이 나오는데, 헤드라이트를 유심히 보시길 바랍니다.
아치 모터사이클은 ‘퍼포먼스 크루저’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크루저를 기본으로 하지만 스포츠 바이크에 가까운 성능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크 전폭은 최대한 좁게, 무게중심을 낮게 만들어 핸들링&코너링이 민첩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급진적이면서도 희소한’ 바이크 제작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대중적인 바이크로 키울 생각은 없다는 거죠. 저 같은 사람은 아마 구경할 기회조차 잡기 어렵겠지만, 세상 멋지게 바이크를 타면서 취미 생활까지 제대로 하시는 리브스님(…)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