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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이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몫을 착실히 해온 배우 전혜진이 드디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1998년 영화 ‘죽이는 이야기’로 데뷔해 20년 넘게 영화, 드라마, 연극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전혜진. 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역으로 내공 높은 연기를 보여주며 36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그는 최근까지도 ‘희생부활자’,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택시운전사’, ‘시인의 사랑’, ‘뺑반’, 드라마 ‘미스티’까지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이름을 알리기엔 다소 아쉬움이 남았었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극본 권도은, 연출 정지현, 권영일, 제작 화앤담 픽쳐스, 이하 ‘검블유’)에서 전혜진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였다.
’검블유‘에서 전혜진 맡은 역할은 포털업계 1위 회사인 유니콘의 이사이자 KU그룹의 며느리 ’송가경‘. 가경은 ’검블유‘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변화가 많은 캐릭터였다.
드라마 초반 무기력하면서도 차가웠던 가경은 차라리 악역에 가까웠다. 절대 권력을 쥔 시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과거 자신이 아꼈던 후배를 압박하고 해고하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경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름답고 똑똑하고 정의롭던 재벌집 외동딸이 망할 뻔한 친정을 살리려고 정략결혼해 10년 동안 시댁의 개로 살면서 자아가 깨지고 박살난 처절함을 전혜진은 드라마에 드러나지 않은 서사까지 유추시키는 섬세한 연기로 완성,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좀전까지 자신과 부모를 모욕한 시어머니 드리라며 갓김치를 쥐어주는 엄마를 보며 환멸을 느끼는 장면과 10년 전처럼 시모 앞에 무릎 꿇은 부모를 보며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않겠다며 ’이혼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은 지금까지 가경이 받은 상처와 그로 인한 고뇌를 한번에 설명해주는, 발군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장면들이었다.
결국 가경은 마지막에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 남편, 부모, 십수 년을 몸담았던 회사까지 훌훌 털어버리고 정의롭고 똑똑하고 아름다웠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렇듯 ’가경‘이라는 캐릭터는 감정변화의 진폭이 컸던 인물. 게다가 다른 캐릭터들과의 관계 역시 매우 복잡하고 다변적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감정의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그렇지만 이런 가경을 전혜진은 창의적이면서도 입체적으로 해석, 정교한 연기로 완성시켰다. 거세된 듯한 절제된 감정 속 미세한 표정변화와 대사톤의 강약 조절로 가경이라는 인물을 납득시켰다. 그 결과 시청자들은 드라마 초중반 타미와 바로를 괴롭혔던 가경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현재 ’검블유‘의 팬들은 ’전혜진 처돌이‘를 자처하며 전혜진을 ’앓고‘ 있는 상황.
데뷔 20여년 만에 인생 캐릭터를 만나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 전혜진. 제대로 포텐 터진 그가 영화 ‘백두산’을 비롯한 차기작에서는 또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앞으로의 행보에 더욱 기대가 모아진다.
/김주희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