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게 될 줄이야”
2006년 씨야의 메인보컬로 데뷔한 가수 김연지가 뮤지컬 배우로 나섰다. 가수로 불리던 김연지는 이제 배우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됐다. 그는 “기분은 좋은데 아직 뮤지컬 배우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다. 춤과 연기, 노래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 종합예술인 뮤지컬에 겁도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뮤지컬을 하기로 마음먹고부터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두세 개 작품에서 떨어졌다. ‘마리 앙투아네트’ 오디션도 한번 떨어졌고 다시 도전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새벽까지 연습한 연기를 보여드렸다. 간절한 마음은 통했다. 그렇게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주역으로 무대에 오르게 됐다.
김연지는 특히 뮤지컬 무대의 마지막 커튼콜의 첫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얼떨떨하고 쑥스러웠다. 잘해서 받는 박수인 건가 의문도 잠시 들어 처음엔 박자에 맞춰 형식적으로 내려갔다.”는 일화도 전했다. 하지만 커튼콜 무대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그 의미가 가슴으로 와 닿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한달이 넘은 뒤에서야 “커튼콜 무대에 올라 진심으로 인사한다. 오늘은 내가 잘 전달했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죄송하다는 생각으로 내려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왕비였으나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드라마틱한 삶과, 사회의 부조리에 관심을 두고 혁명을 선도하는 허구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의 삶을 대조적으로 조명해 진실과 정의의 참된 의미를 다룬다. 김연지가 첫 뮤지컬 도전장을 내민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 속 마그리드이다. 사회적인 부조리를 참지 못하고 혁명을 이끄는 인물이다.
노래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뮤지컬 연기는 그에게 두려움을 안겼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자연스러운 움직임, 걸음, 손짓이다. 그런 그에게 큰 도움을 준 이는 마그리노 아르노 역에 더블 캐스팅 된 뮤지컬 선배 장은아이다. 장은아는 후배 김연지에게 “너와 내가 다른 이미지고 생각하는 캐릭터가 다르니까 너만의 그림을 그려봐’라고 조언했다.
“제가 실수하거나 모르는 뮤지컬의 룰을 집어주셨고 고칠 점과 바라는 점을 알려주셨다. 누구보다 많이 의지하고 친언니같이 친해졌다. 저를 보면 자신의 처음이 생각난다며 작은 선물과 편지를 주셔서 감동받았다. 무대에서 매번 같은 감정으로 연기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요즘 마그리드가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
마그리드는 ‘난 이만큼 화났어’라고 바로 표현하는 행동파이다. 어려움과 고통, 분노를 악역이 아닌 정의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으로 극을 이끄는데 다른 힘센 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실수를 깨달았을 때 생각을 변화하는 매력있는 여인이기도 하다. 김연지는 “마그리드의 감정 하나 하나를 진심으로 느껴서 그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마그리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겉모습만 보고 오해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내가 생각한 대로 보지만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닐 때가 훨씬 많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푹 빠져있는 김연지의 마음을 강력하게 움직인 장면은 2막에서 재판이 끝나고 마리를 보내는 장면이다. 그는 “마그리드가 사형 선고를 받은 마리의 손을 잡고 ‘이것밖에 해줄 게 없구나’라고 하는데 처음으로 마음이 통해 서로만 아는 교감을 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과 마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느낄 때 가슴이 아프고 집중된다. 관객도 그때부터 흐느끼는 게 느껴진다. ”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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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가 끝날 때마다 뮤지컬 배우들은 박수를 받는다. 가수 경험을 지닌 김연지에겐 그 느낌 역시 새롭게 다가왔다. 그는 “가수는 노래 한 곡에 시적인 스토리가 담겨 여운을 느끼게 한다. 뮤지컬은 다양한 넘버들이 상황을 설명하고 이어간다. 넘버들이 스토리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보고 나서 각자 자신에게 기억에 남는 곡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관객들이 극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털어놨다.
김연지의 롤모델은 걸그룹 핑클 멤버에서 뮤지컬 디바로 무대를 휩쓸고 있는 옥주현이다. 실제 김연지와 옥주현은 가요계 선후배로 인연이 있었다. 김연지는 옥주현이 걸어온 뮤지컬 배우의 길에 대해 더 알고 싶어했다. 그는 “주현 선배가 이 길을 어떻게 걸어왔을까, 직접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선배님이 어떤 길을 걸어갔는지 조언을 받으면서 갈 수 있다면 잘 따라서 가고 싶다. 저 역시 누군가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뮤지컬 배우의 매력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 계속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된 배우가 되고 싶다.
한편,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는 11월 17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사진=양문숙 기자]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