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초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대통령 참모진들은 매일 격무에 시달렸다. 금요일 오후마다 열리는 정기 회의는 밤 8시나 9시까지 계속되기 일쑤였다. 회의는 의장이 토요일 오전에 속개하겠다는 선언을 하고서야 간신히 종료되곤 했다. 하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백악관은 흥분이 가득하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이 토요일 회의 참석자에게 초과 근무 수당 지급을 지시했다. 그 지시 이후 백악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토요일 회의는 다시는 열리지 않았다.
이는 당시 백악관 보좌관으로서 참모진 회의에 참석했던 토머스 셸링이 생전 경제학자 새무얼 보울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회상한 내용이다. 셸링은 백악관 근무를 그만둔 후 반세기가 흐른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 석학이기도 하다.
보울스는 셸링이 자신에게 ‘선한 동기’와 ‘인센티브’가 인간의 행동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려 했다고 신간 ‘도덕경제학(The moral economy)’을 통해 전했다. 스스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꺼이 토요일에 출근하던 참모들의 심리에 초과 근무 수당이라는 인센티브가 되레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 ‘왜 경제적 인센티브는 선한 시민을 대체할 수 없나’가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런 점이다.
셸링처럼 저자인 보울스 역시 저명한 경제 석학이다. 2006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에프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미국 산타페 연구소의 연구 교수로서 행동과학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고 이후에는 매사추세츠대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도 메사추세츠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덕경제학’ 외에도 ‘협력하는 종’‘미시경제학 : 행동, 제도 그리고 진화’‘자본주의 미국에서의 학교 교육’ 등을 저술했다.
보울스는 ‘도덕경제학’을 집대성하기 위해 30년 동안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사례를 수집했다고 한다. 전통 경제학은 인간이 사리사욕에 따라 움직이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명제를 신성불가침처럼 여기지만, 저자는 이 명제가 실제 사회에서 반드시 작동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저자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인센티브에 둘러싸여 살아가지만 인센티브가 반드시 인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는 학생의 학습 독려를 위해 상장을 수여하고, 회사와 같은 조직은 노동자의 생산성 증대를 위한 성과급 체계를 갖추거나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은 데 따른 벌금을 부과하는 등 우리 주위에는 다양한 형태의 인센티브가 존재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일명 ‘몰아냄 효과(crowding-out)’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벌금이나 상 없이는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센티브의 전제가 사람들에게 ‘불쾌한’ 정보로 작용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때로 인센티브는 사람들에게 성과를 위해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된다는 암시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인센티브라는 틀이 생겨버리면 사람들은 자신을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로 규정하고, 더이상 자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센티브의 균형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저자는 ‘도덕적이고 시민적 덕성을 갖춘 개인’이라는 전제 하에 이 같은 덕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할 것을 제안한다. 시민의 덕성과 연대를 복원하고, 약자와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더 공정한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만8,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