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급락하자 개인들이 올 들어 주식시장에서 21조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인 가운데 올해 말 기준 종목당 3억원(기존 10억원)으로 크게 낮아지는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기준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주주 요건을 충족하면 내년 4월1일 이후 매도분에 최고 33%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특히 정부가 증시안정펀드까지 내놓으며 증시 활성화를 강조하는 와중에 대주주로 판단될 경우 조부모(외가 포함)와 자녀 등 직계존비속 및 배우자가 보유한 주식까지 합산해 과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들어 주식 양도세 기준에 대한 투자자들의 개선 건의와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일부터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된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에도 찬성 인원이 한 달 만에 1만명을 넘어섰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최근 목돈을 투자하는 개인투자자가 늘면서 양도세 강화에 대한 불만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종목당 10억원 이상이었던 양도세 부과 대주주 범위가 확대돼 올해 말 특수관계인을 합쳐 종목당 3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면 내년 4월부터 매도차익에 22~33%가 과세된다.
올해 말 기준 본인이 5,000만원, 아버지가 2억원, 조부가 1억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총 3억5,000만원의 주식을 보유했으므로 세 사람 모두 대주주가 된다. 이들이 내년 4월1일 이후 주식을 팔 때는 양도세를 내야 한다. 한 증권전문세무사는 “부동산 대신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경우가 상당수 있는데 이들이 양도세 부과 대상인지 확인하러 가족회의를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 추정으로는 현재 종목당 10억원 이상 보유자가 약 2만3,000명, 3억원 이상 보유자는 5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특수관계인을 기준으로 산출할 경우 8만~10만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연구원의 황세운 박사는 “만약 ‘3억원 기준’이 유지되면 양도세 회피를 위해 연말 개인투자자들이 대규모 매도에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개인의 대규모 ‘뉴머니’가 증시로 유입되고 있지만 과도한 세금정책이 장기투자를 막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업계와 정치권에서 양도세 기준을 기존 10억원으로 유지하거나 개인별 과세로 전환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르는 이유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여러 건의가 들어오고는 있지만 기존 계획에서 변화된 것은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혜진·황정원기자 hasim@sedaily.com
"올들어 21조원 사들인 개인, 연말 '양도세 회피' 역대급 매물 가능성" |
소액주주가 상장주식에 투자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주식부자’에 대해서는 ‘대주주’라는 이름을 달아 세금을 매긴다. 정부는 대주주 요건을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세원을 넓혀왔다. 대주주 기준은 지난 2017년 말 기준 코스피 종목당 25억원, 코스닥 20억원, 2018년에는 각각 15억원, 지난해 말에는 10억원으로 더 낮아졌다. 올해 말에는 또다시 3억원으로 대폭 줄어든다. 과세 기준일은 4월1일지만 대주주 판단 기준은 전년 12월 말이다. 이에 따라 올해 말 대주주 요건에 부합하면 내년 4월1일 이후 매도분에 대해서는 양도세를 내야 한다. 양도세는 양도차익이 3억원 이하의 경우 22%(이하 지방세 포함), 3억원 초과는 27.5%다. 보유 1년 이내에 매도할 경우에는 33%의 고율의 세금이 부과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마다 연말에는 개인들의 주식 매도가 거셌다. 특히 올해는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직접투자 열풍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증시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3억원 기준이 유지된다면 연말로 갈수록 개인들도 매도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 “가족 보유액 합치지 말고 인별로 양도세 대상 판단해야”=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대주주 양도세 부과 기준에서 가장 불합리한 대목은 대주주 요건 판단 시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까지 합산한다는 점이다. 소득세법상 직계존비속과 배우자가 이에 해당한다. 직계존비속은 조부모(외가 포함)와 부모·자녀·손자녀까지 포함된다. 이에 따라 본인이 양도세 부과 대상인지를 알려면 가족들과 주식 보유현황을 공개해야 한다. 과거에는 종목당 10억원으로 기준금액이 높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올해 말 기준 3억원으로 대폭 하향되면서 대주주 요건에 되는 사례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증권사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부부 사이에도 재산을 다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조부모와 자녀까지 보유지분을 공유해 대주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최근 들어 예금이나 부동산에서 눈을 돌려 삼성전자에 목돈을 묻어두는 개인들이 늘고 있는데 가족 지분을 합쳐 3억원이 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개인별로 대주주를 가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종합부동산세 역시 부부도 인별로 과세금액을 따지는데 주식은 직계존비속에 배우자까지 합쳐 양도세 과세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적어도 직계존속이 아닌 직계비속(자녀)과 배우자 정도까지만 합쳐서 대주주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같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배우자와 자녀 정도까지만이라도 합산하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종부세처럼 인별 기준으로 과세 대상 정하고 |
기존 10억 기준 당분간 유지 필요 목소리 |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는 대주주 기준이 3억원으로 대폭 강화된 만큼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매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가뜩이나 증시가 침체된 상황에서 ‘3억원 기준’이 유지된다면 연말에 역대급 개인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 3억원으로 낮아지는 기준을 당분간 유예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3억원 대주주 기준은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고 본다”며 “부디 심사숙고해 자본시장·주식시장이 침체되지 않도록 대안을 찾아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청원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황 연구위원은 “증시 불안이 진정될 때까지 갱인별 10억원 기준으로 대주주 여부를 판단해 과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김영진 금융투자협회 세제지원부장도 “개인투자자들이 증시에 장기적으로 머물며 기업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대주주 양도세 부과 기준의 손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