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은 각국 기업에 치명타를 안기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대·중견기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항공을 비롯해 자동차, 정유, 철강 등 주로 대기업인 기간산업이 큰 피해를 입었죠.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기간산업 대책을 내놓겠다고 한 상태지만, 실제 발표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뜸을 들이는 사이 기간산업을 살릴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는 우려가 커집니다.
숨 넘어가는 항공업... “정부 지원 절실”
지원 대책이 가장 절실한 곳 가운데 하나가 항공업입니다. 코로나 19의 글로벌 확산으로 여객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지난 3월29일부터 이달 4일까지 김포공항에서 국제선을 이용한 승객(환승 포함)은 ‘0명’ 입니다. 아무도 없었다는 얘기죠. 1년 전 승객 수가 9만명이었던 것과 너무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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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자 항공사 대부분은 비상경영 상태로 돌입했습니다. 국내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오는 16일부터 6개월 동안 국내 지역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유급휴직을 실시한다고 지난 7일 밝혔습니다. 휴업 규모는 전체 인원의 70%를 넘는 수준입니다. 아시아나항공도 이달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15일 이상의 무급휴직을 실시하고 조직장 이상을 대상으로 급여 반납을 진행하는 등 고강도 비용 절감에 돌입했습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가 코로나 19 여파로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는 설(說)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저비용항공사(LCC) 역시 매출 급감에 시달리고 있고, 공항 내 면세점과 항공 지상조업사 등 코로나 19 피해는 연쇄적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지원, 특히 금융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정부가 LCC를 대상으로 3,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발표한 데 이어 항공기 정류료 면제, 공항시설 사용료 납부 3개월 유예, 미사용 운수권 회수 유예 등 대책을 내놓은 바 있으나, 사실상 도산 위기에 빠진 항공사 지원을 위해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죠. 항공업계는 이 상태로는 5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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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EU는 ‘항공 대기업’ 전폭적 지원
정부도 일단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뿐 아니라 대기업도 돕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회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 조달 길이 막힌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대기업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을 찾고, 보유 자산 매각 등으로 이른바 ‘자구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 지원은 여력이 적은 중기와 소상공인에 좀 더 집중돼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지금이 대기업의 여력을 따질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산업의 기간산업인 항공업은 네트워크가 곧 자산인데, 한 번 망가지면 이를 복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입니다. 미국과 EU, 일본은 코로나 19로 타격을 입은 항공업에 선제적으로 지원 방안을 내놨습니다. 미국은 항공산업 긴급지원법안에 따라 항공사와 화물운송업체를 대상으로 총 320억달러(약 39조4,000억원) 규모의 보조금과 290억달러 어치의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항공·운송 관련 세금과 항공유에 부과하는 세금도 내년 1월까지 전액 면제됐습니다. 독일은 자국 항공사에 대해 금융지원 제한을 아예 없앴고, 프랑스는 금융지원과 법인세 납부유예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들 국가의 항공사도 대기업인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은 대기업-중소기업이라는 이분법으로 주저할 상황이 아니라는 분석 때문이 아닐까요? 허희영 한국공항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장 두려운 것은 다른 나라 항공사들에 우리 네트워크를 빼앗기는 것”이라면서 “제조업은 공장 문을 닫더라도 다시 돌리면 되지만, 항공 운수업은 네트워크가 사라지면 그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향적인 대책 서둘러야
항공업을 제외하곤, 정부도 산발적으로 기간산업 업종별 대책을 내놓고 있기는 합니다. 코로나 19와 국제유가 하락 ‘이중고’를 겪고 있는 정유업계를 위해 석유 수입 시 리터(ℓ) 당 16원을 고정가로 받는 석유수입부과금의 납부를 3개월 동안 유예해주기로 했습니다. 총 9,00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는 것이 정부 설명입니다. 또 올해 비축유 구매량을 당초 계획보다 2배 가까이 늘린 64만배럴로 늘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가 하락으로 가격이 급락한 재고 원유의 일부를 정부에 팔 수 있고, 정부로서도 싼 값에 비축분을 늘려 에너지 위기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그러나 피해가 전방위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기간산업의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의 구조적 문제나 특정 기업의 경영진 문제에서 비롯된 유동성 위기가 아니고, 일종의 천재지변에서 기인한 사태이기 때문에 정부가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조건 없이 지원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