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복병의 등장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가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브렉시트를 위한 마지막 관문인 유럽연합(EU)과의 협상 차질과 전환기간 연장 목소리 등으로 노딜브렉시트(합의가 없는 영국의 EU 탈퇴) 우려가 커지면서 영국의 EU 탈출 실험이 불확실성에 직면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올해 글로벌 경제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노딜브렉시트가 단행된다면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도 큰 충격파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6일(현지시간) 영국 B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더 이상 어려움을 추가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며 “영국은 전환기간 연장을 통해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영국 측 협상대표인 데이비드 프로스트 브렉시트 수석보좌관은 ”올해 12월31일에 이행이 끝난다”면서 “우리는 연장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만약 EU가 요청한다면 안 된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도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브렉시트 이행과정의 협상을 놓고 영국과 유럽 간 입장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달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미래관계 1차 협의가 진행됐던 브렉시트 협상은 코로나19로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다. 18∼20일 영국 런던 개최가 예정됐던 2차 협상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된 상태다. 협상 당사자인 프로스트 보좌관과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데 이어 브렉시트의 키를 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마저 확진된 데 따른 여파로 양측 간 협상은 사실상 무기한 연장됐다.
협상이 진행된다고 해도 코로나19 때문에 화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EU가 관세와 쿼터(할당량)·덤핑 등이 없는 전례 없이 넓은 범위의 무역협정을 영국에 제안할 예정인 가운데 화상회의로 복잡한 논의를 진행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불안요소로 꼽힌다.
양측은 브렉시트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올해 말까지 브렉시트 전환기간을 설정했는데 전환기간에 영국과 EU는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에 나서게 된다. 전환기간을 최대 2년까지 연장할 수 있고 영국이 연장을 원하면 오는 7월1일까지 이를 요청해야 한다. 존슨 총리는 EU 탈퇴협정 법안을 새롭게 내놓으면서 전환기간을 연장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등 전환기간 연장 불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EU는 연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연장 결정까지는 두 달 정도 남은 상황이라 영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 한 노딜브렉시트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의 타격이 큰 상황에서 노딜브렉시트로 불확실성이 높아질 경우 피해가 기업뿐 아니라 가계로도 확산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브렉시트 발표로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하며 EU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영국 기업들은 비용 부담이 커져 큰 피해를 봤다. 코로나19로 영국 노동자의 4분의1인 900만명이 해고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물론 영국 내에서는 경제재건을 위해 브렉시트를 빨리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미국과 EU 간 관세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라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미국이 EU에 관세를 부과해도 그 피해를 비켜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코로나19의 충격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 브렉시트를 서두른다고 해도 영국이 독자적으로 경제재건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영국이 전환기간 연장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입장을 바꿀 경우 존슨 총리는 정치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셈법이 복잡해진 영국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모르는 만큼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은 당분간 더 커질 것이라는 예상에 무게가 실린다. 톰슨로이터의 시장 전문가인 리처드 페이스는 “영국과 EU가 전환기간 연장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영국 경제와 파운드화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