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남부 도시 쿠싱에서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배경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해외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에너지 전략의 핵심”이라며 “송유관 사업 공사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역설했다. 캐나다 서부에서 미국 네브래스카를 거쳐 쿠싱으로 이어지는 ‘키스톤 XL 파이프라인’ 사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당시 정가에서는 미국 전역을 가로지르는 송유관 기지라는 상징성을 절묘하게 활용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쿠싱은 오클라호마주에 위치한 인구 8,000여명의 소도시로 미국 최대의 석유비축 기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300개를 훨씬 웃도는 석유저장 탱크가 밀집돼 있다. 쿠싱은 1912년 채굴업자 토머스 슬릭이 원유 탐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며 최대 유전지대로 발돋움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하루 30만 배럴을 뽑아내 세계 생산량의 3%에 이를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1940년대 들어 유전이 고갈되면서 미국 최대의 석유비축 기지로 변신하게 됐다.
쿠싱은 원유 트레이더들의 치열한 정보전쟁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재고량에 따라 국제유가의 벤치마크인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등락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들은 고성능 적외선 카메라가 장착된 헬기를 띄워 석유 재고량을 산출해 고가에 정보를 팔고 있다. 원격 전자기장으로 펌프의 전력소비량을 파악하는 방식까지 동원될 정도다. 2016년 11월에는 이 지역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해 유가가 출렁이는 소동을 겪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석유 소비가 급감하면서 쿠싱이 저장시설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최대 저장능력 8,000만 배럴의 80% 수준에 근접했고 예약분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저장시설이 다 채워진 셈이다. 한때 미국 에너지 독립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쿠싱이 때아닌 곤경에 처한 것이다. 에너지 패권을 자랑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지 지켜볼 일이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