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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발행' 정부는 왜 지역화폐에 꽂혔나 [경제를풀다]

'너도나도 발행' 정부는 왜 지역화폐에 꽂혔나 [경제를풀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습니다. 근데 현금도 쿠폰도 아닌 ‘지역화폐’로 준다고 하네요. 지역화폐가 대체 뭘까요. 실제 화폐랑은 어떤 점이 다르길래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준다는 걸까요.

■지역화폐는 무엇? 실제 화폐랑 뭐가 다를까.

지역화폐는 이름 그대로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의미합니다. 특정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해 특정 지역 내에서만 소비되는 화폐라고 설명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하겠네요. 예를 들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전 도민에게 10만 원씩 주기로 한 ‘경기지역화폐(GMONEY)’는 경기도에서 발행해 경기도 내에서만 쓸 수 있는 겁니다. 간단하죠? 하지만 정작 사용하려고 해보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경기도만 하더라도 31개 시·군에서 제각각 31개의 지역화폐를 다양한 형태로 발행하고 있거든요.

'너도나도 발행' 정부는 왜 지역화폐에 꽂혔나 [경제를풀다]

일례로 시흥시는 지류형(종이상품권)과 QR코드 결제 방식인 모바일형 지역화폐 ‘시루’를 발행하고 있고 고양시는 체크카드처럼 결제되는 선불·충전형 지역화폐 ‘고양페이’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성남시는 자체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을 지류형과 카드형, 모바일형 3종류로 발행하고 있죠.

결제 방식뿐 아니라 발행 방식에 따라서도 지역화폐는 구분이 됩니다.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처럼 정부 보조금을 지역화폐로 주는 ‘정책발행’과, 소비자가 직접 구입해 쓸 수 있는 ‘일반발행’으로 나눌 수 있죠. 정부가 정부지원금을 화폐를 발행해 주는 ‘정책발행’의 경우 사용처뿐 아니라 사용기간까지 제한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경기도는 이번에 전 도민에 10만원 씩 긴급재난지원금을 주면서 3개월 내에 써야 한다고 기간 제한을 뒀죠. 반면 일반발행되는 지역화폐는 지역주민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보니 관심을 끌기 위해 할인이나 캐시백 등의 혜택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의 지역화폐인 서울사랑상품권의 경우 3월 말부터 한시적으로 10만원 상품권을 15% 할인된 금액인 8만 5,000원에 팔았고, 5% 캐시백까지 제공합니다. 사용기한 제한도 당연히 없죠. 사용처만 정해져 있지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지역화폐를 20% 싸게 팔다 보니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수천 억 원 어치가 팔려 현재는 할인율을 10%로 낮췄다고 하네요.

'너도나도 발행' 정부는 왜 지역화폐에 꽂혔나 [경제를풀다]

■앞다퉈 발행되는 지역화폐, 지자체는 왜 지역화폐에 꽂혔나.

이렇게 발행된 지역화폐는 해당 지역 내에서만 쓸 수 있는 것을 넘어 주로 전통시장이나 영세 상점 등을 사용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대형마트, 연매출 10억원 초과 사업체, 유흥업소, 직영 주유소 등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죠. 이렇게 제한을 둔 이유는 국내 지자체들이 앞다퉈 지역화폐를 발행하게 된 근본적인 목적, 즉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목적과 관계가 깊습니다.

사실 대다수 지방 정부들은 온라인 경제의 발전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로 인한 소득의 ‘역외 유출’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역에서 일하고 지역이 제공하는 각종 복지혜택을 누리는 주민들이 정작 ‘소비’는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하다 보니 지역으로 흘러들어와야 할 세수가 부족해진 겁니다. 만년 재정 적자 상태를 벗어나려 고민한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지역화폐입니다. 정부가 주는 각종 지원금을 지역 내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로 제공한다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테고 지출한 복지예산보다 세수 증가분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 겁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재정 적자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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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정부의 지역화폐 실험은 2006년 무렵부터 본격화됐습니다. 경기 성남시는 정부지원금 등을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제공해 성남시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게 했는데 2006년 20억원 규모로 시작된 사업이 2017년 260억원까지 늘어나며 성공리에 안착했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지역화폐 ‘화천사랑상품권’를 발행한 강원 화천시는 산천어축제 입장권을 사면 일부를 지역화폐로 돌려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관광 수입까지 늘렸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화천시는 예산 4,400만원을 들여 화천사랑상품권을 발행했는데 이를 통한 부가가치가 16배 많은 7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성공 사례들이 줄줄이 나오자 지역화폐 도입에 앞장서는 지자체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지난해까지 지역화폐를 발행한 전국 광역·기초자치단체는 177곳으로 전체 243곳의 약 70%에 이릅니다. 발행액 역시 2015년 892억원 규모에서 2018년 3,714억원, 2019년 2조 3,000억원으로 급격하게 늘고 있다고 하죠. 올해는 3조원을 너끈히 넘어설 거라고 합니다.

지역화폐의 장점이 또 하나 있는데 최근 등장한 지역화폐는 모바일 간편결제나 선불카드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아 소상공인들이 내야 할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 등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소비자는 물론 소상공인들까지 행복하게 해준다는 설명이죠.

'너도나도 발행' 정부는 왜 지역화폐에 꽂혔나 [경제를풀다]

■나랏돈으로 일군 지역화폐, 계속될 수 있을까

이토록 장점이 많다면 지역화폐는 더 많이 발행되는 게 좋은 걸까요.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국내 지역화폐는 대부분 지방정부 주도로 발행되고 있죠. 지역화폐가 제공하는 각종 소비자 혜택이 결국 우리가 낸 세금에서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현재 발행되는 지역화폐 대다수가 영세 점포나 지역 소상공인 가게에서만 쓸 수 있도록 돼 있는데요, 이 경우 얼핏 보면 소비자가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나랏돈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가격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불만도 나올 수 있습니다. 소상공인들의 역할이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건 맞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시도가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오죠. 예컨대 지금 총 20%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서울사랑상품권의 경우 화폐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재정부담도 급격히 늘어날 겁니다. 지역화폐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쌓일 수 있죠.

사용처의 제한, 결제의 불편함 등으로 대부분 지역화폐가 일회성 사용에 그치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해서 일반 소비자들이 지역화폐를 사용하게 하는 건 성공했는데 정작 지역화폐를 받은 상인들은 바로 이 지역화폐를 곧장 현금으로 바꿔버리는 겁니다. 이런 식이라면 지역화폐 발행 비용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계속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지점은 흔히 ‘깡’이라고 말하는 불법 현금화입니다. 20% 할인하는 지역화폐를 100만원 어치 사서 현금화할 수 있다면 아무런 수고 없이도 20만원을 번다는 계산이죠. 각 지자체는 이런 현금깡을 막기 위해 구입 한도를 설정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해 보지만 이미 여러 ‘비법(?)’들이 온라인 카페 등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번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법 현금화를 막지 못한다면 정부 재정은 재정대로 지출되고 돈은 시장에 돌지 않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 겁니다.

'너도나도 발행' 정부는 왜 지역화폐에 꽂혔나 [경제를풀다]

■지역화폐 오래가려면 정부주도형 한계 깨야

앞서 말했듯 국내 지역화폐 사업의 가장 큰 한계는 정부 주도형이라는 점일 겁니다.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이 사라져도, 각 지자체가 재정을 털어 제공하는 할인·캐시백 혜택이 없어져도 과연 사람들이 현금이나 신용카드 대신 지역 화폐를 계속 쓸까요.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에 지속 가능한 지역화폐를 꿈꾼다면 해당 지역화폐로 가장 큰 수혜를 입는 당사자들이 적극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대다수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지역 소상공인들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지역의 소상공인들 역시 좀 더 자발적으로 사업 활성화에 힘을 보탤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역화폐로 결제하면 선물을 준다거나 음료 서비스를 준다거나 하는 노력을 통해 정부 주도의 각종 혜택이 없어지더라도 매력적인 화폐로 남도록 해야 하는 거죠.

'너도나도 발행' 정부는 왜 지역화폐에 꽂혔나 [경제를풀다]

지역화폐는 태생적으로 중앙정부에서 발행하는 범용화폐, 국가화폐(원, 달러 등)와 비교해 여러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도 수많은 지역화폐가 생겨나고 또 그만큼 소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2년 발행을 시작해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는 영국의 브리스틀 파운드나 2004년 첫 발행돼 15년 이상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아톰통화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지역화폐도 많습니다. 우리의 지역화폐들도 여러 단점들을 개선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화폐가 되면 좋겠습니다.

/글=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영상제작=이혜진인턴기자 hzzin1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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