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유가가 급격하게 추락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과 연계된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상장지수증권(ETN)이 보유 자산을 긴급하게 바꾼다. 이들 상품이 추종하는 기초지수 산출 기관이 공급 과잉이 심화하는 원유 시장의 상황은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예정에 없던 구성 종목 변경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ETF·ETN은 가격이 추락하는 WTI 6월물 대신 변동성이 덜한 7월물을 편입하는 까닭에 상품의 가격 변동폭도 다소 줄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종목 교체(롤 오버)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수익률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다만 이번 지수 변경에 따라 운용사들이 WTI 6월물을 대거 매도에 나설 경우 원유 시장은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8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KODEX WTI원유선물(H)’ ‘KODEX WTI원유선물(H) 인버스’ ‘TIGER 원유선물인버스(H)’가 보유한 원유선물의 월물 교체를 진행한다. 이들 ETF가 추종하는 기초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GSCI 크루드오일 인덱스 ER지수’의 구성이 28일(현지시간) 장 마감 후 기존 ‘6월물 100%·7월물 0%’에서 ‘6월물 0%·7월물 100%’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에 운용사들은 29일(한국시간) 새벽 현재 보유한 6월물을 매도하고 원월물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게 된다. 신한금융투자·삼성증권·NH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대신증권 등이 발행한 원유 ETN 역시도 기초지수 변경으로 ETN의 롤 오버가 진행될 예정이다. 다만 이날 6월물의 정산가격이 ‘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롤 오버는 진행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
통상 기초지수의 구성 종목은 매월 초 5영업일부터 9영업일까지 20%씩 교체해왔다. 하지만 국제 원유시장에서 최근월물(6월물)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자 긴급하게 그 방식을 바꾼 것으로 분석된다.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는 7월물로 교체해 변동성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원유 ETF·ETN의 변동성도 다소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상품의 수익률에는 부정적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만기가 가까운 근월물의 가격보다 만기가 먼 원월물의 가격이 높은 이른바 ‘콘탱고(contango)’가 심화하면서 월물 교체 시 롤오버에 따른 비용 등이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유가를 역으로 따라가는 인버스형도 성과가 저조해 보일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원유 상품의 가격변동이 예상과 크게 달라질 수 있어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유시장에 던지는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들이 6월물을 일시적으로 전량 매도하게 되면 유가가 또 출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6월물 전량 매각의 방침을 세운 미국의 대표적인 원유 ETF ‘US오일펀드’가 매도에 나서면서 6월물 가격이 급격히 하락한 바 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긴급 지수 변경은 국제 원유 시장에서 WTI 6월물의 하방 압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KODEX WTI원유선물 등을 비롯한 주요 펀드들이 이미 6월물 비중을 줄여놓은 탓에 이번 지수 변경이 원유 시장에 큰 무리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편 이날 국제 가격의 급락으로 원유 가격 상승에 투자하는 ‘대신 WTI원유 선물 ETN(H)과 ‘신한 WTI원유 선물 ETN(H)’은 각각 22.67%, 21.67% 떨어졌다. 유가의 급등락으로 ETN 종목의 변동성도 커졌다. 신한 WTI원유 선물 ETN의 경우 괴리율(21.4%)이 20%를 웃돌아 29일 단일가 매매가 진행되며 ‘신한 브렌트원유 선물 ETN(H)’은 괴리율(31.1%)이 30%를 넘어서면서 29일부터 3거래일간 거래 정지를 맞게 됐다. 거래 재개일은 다음달 7일이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