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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의 유명 여배우가 불륜설 논란에 휩싸였다. 대상은 올해 38세로 중국 연예계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는 중인 퉁리야다. 그가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 등을 운영하는 중국중앙방송총국(CMG) 사장인 선하이슝과 재혼했는데 이것이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선 사장과 퉁리아는 각자의 기존 배우자와 이혼했으며 지난 21일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퉁리야가 그동안 중국 방송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선 사장은 중국 미디어를 통제하는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부장(차관급)이라는 점에서 그가 퉁리야를 뒤에서 밀어줬다는 해석도 나왔다. 중국 당국이 두 사람에 대한 결혼소식과 관련해 인터넷 정보 통제를 강화하면서 불륜과 검열 논란은 더 커지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중국 경찰은 두 사람의 재혼과 관련해 불륜 의혹 등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네티즌 3명을 체포해 ‘행정구류’ 처분을 내렸다고 29일 중국 매체들이 전했다. )
일종의 중국 권력자와 여배우의 스캔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흥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와중에 퉁리야의 민족문제가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개인의 프로필에 꼭 민족명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퉁리야의 프로필에 적힌 출신 민족 ‘시버족(Sibe people·중국명 錫伯族)’이 어디냐에 주목했다. (선하이슝 사장은 지배민족인 한족(漢族)이다)
퉁리야의 고향은 신장위구르자치구인데, 이에 따라 그녀를 단순히 위구르족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장 지역은 수천년 동안 수많은 민족들이 들락날락하면서 혼합됐고 그중에서 시버족 이야기는 더욱 극적이다.
퉁리야가 속한 시버족은 위구르족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한때 중국을 정복한 만주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버족은 대략 만주족과 사촌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만주족의 형제 민족이 만주를 떠나 왜 그렇게 먼 신장까지 갔을까. 퉁리야의 출생지인 신장위구르자치구 일리카자흐자치주 찹찰시버자치현은 중국에서도 서쪽 끝인 카자흐스탄과의 국경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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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여년 중국사의 대부분 동안 신장 지역은 중국 영토가 아니었다. 당나라 때 고선지 등의 활약으로 이 지역이 중국에 속한 적이 있다는데 이런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외국이었다. 현재와 같은 국경은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국과 신장을 함께 정복하면서 만들어졌다.
만주제국 청나라는 18세기에 신장 지역까지 점령하고 자국 영토로 복속시킨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이때 대략 그려졌다. 그리고 이 정복지의 명칭을 새로운 영토라는 의미에서 ‘신강(新疆·중국어로는 신장)’으로 명명한다. 정복보다 어려운 것은 영토를 유지하는 것이다. 복속한 현지인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당시 피지배 민족인 한족들도 역시 배제 대상이었다.
해결책은 우호 부족을 이주시키는 데서 찾았다. 만주황제가 선택한 부족이 바로 시버족이었다. 시버족은 민족적 연원이 만주족과 몽골족의 중간 쯤으로 추측되는 데 청나라 만주 군사조직인 팔기제도에 편입되면서 만주족처럼 대우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만주 전역에서 차출된 병사 1,000여 명과 그들의 가족 등 모두 4,000여 명의 시버족은 1764년 만주를 출발해 15개월의 여정 끝에 고비사막 건너 일리 지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기존 현지인들과 완전히 분리된 가운데 신장 방어라는 군사적 임무만 담당했다. 대부분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소수집단 임에도 주변 민족과의 사이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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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을 거치면서도 시버족 단일 집단은 유지됐다. 현재 중국 전체에서 만주지역을 포함해 시버족 총 인구가 19만여 명인 데 이 가운데 약 4만 명이 여기 신장 시버자치현에 거주하고 있다. 초기 이주민에 비해서는 10배 가량 늘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중국내 전체 시버족 중에서 신장 시버족이 특별히 주목을 받는 것은 이들이 만주어(시버족들은 ‘시버어’라고 표현한다)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다. 과거 한때 중국의 표준어였던 만주어가 이미 만주나 중국에서 사어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신장 시버족들은 폐쇄된 생활 덕분에 만주어를 사용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만주족으로 또 다른 유명 연예인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39)과 배우 관샤오퉁(24) 등이 있다. 출생지는 랑랑이 랴오닝성 선양, 관샤오퉁은 베이징이다. 만주를 고향으로 하던 만주족들이 중국 정복 후에는 소수만 만주에 남고 대부분은 베이징 등 중국 영토로 이주했다. 그중에 일부는 신장까지 갔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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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위구르와 티베트에 대한 인권 공세를 지속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 민족문제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휴화산이다. 미국은 최근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을 제정해 신장 지역과 관련된 제품과 노동력으로 생산한 상품의 미국 수입을 금지했다. 이와 함께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로 현재 인도에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의 미국 방문과 대통령 회견이 추진되는 등 티베트도 이미 논란이 커지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중국내 민족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목표 아래 중국 정부가 내놓은 개념이 ‘중화민족’이다. 이는 ‘중국인’이라는 국적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한족이나 만주족, 몽골족 등 중국내 모든 민족이 같은 ‘중화민족’으로서 ‘대가족’을 이룬다는 것이 중국쪽 관방의 선전이다.
물론 중화민족이라고 할 때도 민족성은 한족을 따른다. 이를 테면 한족의 언어인 한어(漢語)가 전국으로 보급되고 다른 비(非)한족의 언어는 말살되게 되는 셈이다. 이미 만주어는 사라진 지 오래고 위구르어와 티베트어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 표준 중국어로 한어인 ‘푸퉁화(보통화)’의 보급률을 2025년까지 전체 인구의 85%, 2035년에는 전면적으로 보급하도록 하는 계획을 지난달 공개한 바 있다. 보급률이라는 것은 다른 민족이나 한족 지방민들 가운데 푸퉁화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현재의 보급률은 80% 정도다.
각 민족들을 중화민족으로 통합할 경우 이웃국가와의 분쟁 가능성도 커진다. 예를 들어 몽골족은 현재의 독립국 몽골공화국과 중국내 네이멍구(내몽골)자치구로 분리돼 있다. 내몽골인들을 ‘중화민족’으로 할 경우 몽골공화국의 몽골인과 네이멍구의 몽골인의 분단은 영원히 고착된다.
위구르족은 다른 측면에서도 시한폭탄이다. 터키의 주도로 최근 출범한 ‘튀르크어사용국기구’(Organization of Turkic States·OTS) 때문이다. OTS는 터키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5개국으로 구성됐다. 현재 중국에 속해있는 위구르족도 튀르크계 민족이다. 튀르크계 중앙아시아인들이 ‘단결’을 요구할 경우 위구르족이 들썩일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는 두만강 건너 조선족 문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중국 정부가 조선족도 ‘중화민족’이라고 하면서 조선족의 전통문화를 ‘중화민족 문화(중국 문화)’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는 한국과의 지속적인 마찰로 이어지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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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발표된 지난 2020년 10월말 기준 중국 제7차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중국 전체 인구 14억1,178만 명 가운데 한족은 12억8,631만 명으로 비중이 91.11%였다. 그 외에 비한족 소수민족이 1억2,547만 명으로 9.89%였다. 중국에서는 한족과 55개 소수민족만 인정된다.
비한족 규모에서는 좡(壯)족이 1,957만 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위구르족이 1,177만 명으로 2위, 회(回)족이 1,138만 명으로 3위, 묘(苗)족이 1,107만 명으로 4위, 만주족이 1,042만 명으로 5위, 이(彛)족이 983만 명으로 6위, 투자(土家)족이 959만 명으로 7위, 짱(藏·티베트)족이 706만 명으로 8위, 몽골족이 629만 명으로 9위, 부이(布依)족이 358만 명으로 10위 등이다.
이와 관련, 조선족은 170만2,479 명으로 비한족 가운데 15위였다. 인구 규모가 10년 전인 지난 2010년 제6차 조사 때(183만929 명)에 비해 7.0%나 감소한 것이 주목된다. 같은 기간 중국내 전체 비한족 소수민족 인구는 10.3%나 늘었다. 이에 따라 조선족 비중 순위는 2010년 조사 때 14위에서 이번에는 한 단계 내려앉았다.
겉으로는 중화민족이라고 하면서 안으로 차별은 계속된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도 중심인 톈안먼 광장(천안문 광장)을 구경이라도 하려고 들어가려고 하면 외곽에서부터 3번 가량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천안문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검문소가 모두 설치돼 있다. 공개된 광장이 이런 모양이다.
일반 중국인들은 익숙한 듯 신분증을 단말기에 체크하고 들어간다. 이들 검문소는 위구르족 등 ‘문제성’ 소수민족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대체적인 해석이다. 지난 2014년 위구르족 남성의 차량돌진 사건이 일어난 이후 천안문 광장의 검문 검색이 강화됐다. 중국 신분증에는 민족 여부가 적혀 있기 때문에 곧바로 알아볼 수 있다.
만약 퉁리야가 시버족이 아닌 위구르족이었다면 선하이슝 사장의 재혼이 쉽게 가능했을까 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문이다. 그만큼 위구르족은 ‘뜨거운 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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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톈안먼 사태’ 30주년이었던 지난 2019년부터는 천안문 광장에 중국 외 국가 기자들의 출입도 금지됐다. 경비를 서는 공안들이 외국인들의 경우 여권의 비자면까지 확인하는데 거주목적(purpose for Residence) 항목에 ‘기자(記者)’라고 적혀 있으면 광장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 기자를 포함해 외신 기자들은 천안문 광장 ‘관광’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자들을 포함해 외국인들은 신장위구르와 티베트에도 출입이 금지 또는 제한된 지 오래다. 중국이 대외적으로 아무리 “위구르족 강제노동은 없다” “티베트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등을 선전해도 이것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요한 이유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