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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순하지도, 뻔하지도 않다. 저마다 돈에 대한 철학을 원동력 삼아 거침없이 움직인다. 지난 9일 11.1%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극본 정서경/연출 김희원)이 그렇다. 드라마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동명 소설처럼,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란 세 자매가 유력 가문과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박쥐’, ‘친절한 금자씨’부터 ‘아가씨’, ‘헤어질 결심’까지 잔혹하면서도 동화적 분위기의 각본으로 특유의 세계를 구축해온 정서경 작가의 두 번째 드라마 도전작으로 기대를 모았다.
엄마가 막내의 수학여행비를 들고 도망친 후 남은 세 자매가 꿋꿋하게 삶을 꾸려간다. 첫째 오인주(김고은)는 자매 중 가장 평범하다. 자매들처럼 특출난 정의감이나 예술적 재능은 없지만 갖고 싶은 것은 많다. “아버지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집에 돈을 가져왔으면” 했다는 인주는 부자가 되어 ‘샷시 좋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게 꿈이다. 이유도 모른 채 사내 왕따를 당하던 인주는 유일한 친구 화영(추자현)이 죽기 전 제게 남긴 20억 원을 발견하고, 자신이 모르던 세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단순 경리인 줄 알았던 화영이 차기 유력 대선 주자 박재상(엄기준)의 비자금 700억 원을 관리해온 것이다. 인주는 비자금을 훔칠 계획으로 화영의 역할을 대신해 박재상이 사위로 있는 유력 가문 원령가(家)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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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건 괜찮으나 가난해서 도둑이 되는 건 싫다”는 둘째 오인경(남지현)은 그런 인주와 대립각에 있는 인물이다. 돈보다 정의를 꿈꾸는 인경은 보배 저축은행 사건을 조사하던 중 재상이 연루됐음을 직감하고, 원령가를 취재하기 시작한다. 막내 오인혜(박시후)는 미술에 재능이 있지만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이를 꽃 피우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인혜는 재상과 원상아(엄지원) 부부의 딸 효린(전채은)의 그림을 대신 그려주고 원령가로부터 경제적 후원을 받는다.
세 자매가 마주한 것은 대한민국 유력 가문 원령가의 과거에서 현재로 얽힌 비밀들이다. 오래전 원상아의 아버지 원기선 장군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부대원 12명을 모아 비밀의 난초 모임 정란회를 세웠다. 이들이 전쟁이 끝난 뒤 부동산 사업으로 큰 부를 쌓고, 정치와 사회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전쟁에서 부동산으로, 부동산에서 정치로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엔 격동적인 현대사를 담아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됐다. 중반에 이르러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비밀을 빠른 호흡으로 들추며 돈과 권력의 기원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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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범죄, 멜로를 적절히 버무린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예상을 비껴가는 전개와 속도감이다. ‘작은 아씨들’이란 무난한 제목 덕에 힐링 극을 떠올리거나 가난한 주인공이 악한 권력자를 뒤쫓는 구조가 진부하게 느껴질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 자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드라마는 어느덧 예측 불가능한 플롯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한 회 내에서도 거듭되는 반전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내달리며 짜릿함을 준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가 욕망에 충실하다. 재상과 세 자매(인주, 인경, 인혜)가 그렇고 이미 높은 곳에 오른 상아가 이를 관조하듯 거대한 연극 놀이를 즐기는 것도 나름의 욕망 추구라 할 수 있다. ‘펜트하우스’와 같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하는 자극적인 소재는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이는 비틀린 인물들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해선 필요한 설정이다.
‘작은 아씨들’이 그리는 멜로 서사도 개성이 짙다. 원상아를 향한 박재상의 사랑은 그 자체로 반전 요소가 된다. 박재상은 상아가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이용당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매들을 사랑하는 건 도일(위하준)과 종호(강훈)의 몫이다. 물론 그들도 욕망에 충실한 인물은 맞다. 그 욕망이 그들에겐 사랑이었을 뿐이다.
반전을 거듭하며 폭풍 전개된 ‘작은 아씨들’은 세 자매가 욕망을 쟁취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프고, 어딘가 현실과 괴리된 느낌을 주는 설정은 작품을 현실적인 이야기라기보단 매혹적인 ‘잔혹 동화’로 느껴지게 한다. 동화를 감상하는 그 시간 동안 최종 빌런은 누구일지 추리하며 푹 빠져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나 무엇을 예측하든, 예측이 의미 없는 전개와 의미를 보여줄 것이니 기대해도 좋다.
◆시식평 -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붙는 ‘정서경 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