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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잔잔하다. 독특한 설정은 있어도 특별한 소재는 없다. 내 이야기가 될 수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의 파편일 뿐이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감독 형슬우)는 사랑 이야기지만 달달함은 없다. 시작부터 장수 커플 준호(이동휘)와 아영(정은채)이 권태기를 겪는 모습이 비춰진다.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며 동거하고 있는 두 사람의 공기는 건조하다. 똑같이 미술학도였지만 준호는 몇 년째 무늬만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고, 아영은 그런 준호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삐걱거리던 두 사람은 연애를 정리한다. 이별의 잔해는 잠시일 뿐, 곧 각자 다른 연인을 찾는다. 이전과 다른 연애를 하는가 싶었지만 특별하지 않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실망하고. 평범한 연애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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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드라마나 영화라면 극적인 재회 장면이 이어지겠지만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다르다. 아영은 태블릿을 돌려받기 위해 준호에게 연락한다. 미련이 보이다가도 대화를 나눌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역시”라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붙일 수 없는 감정을 확인하는 영화”라고 정의한 형 감독의 의도가 보인다.
굴곡 없는 이야기 속 독특한 설정은 헛웃음이 터져 나오게 한다. 태블릿을 갖고 아영에게 가는 준호가 왼쪽 목에 담이 걸려 고개를 돌리지 못하기 때문. 이는 형 감독은 왼쪽 목에 담이 걸린 남자가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태블릿을 돌려주러 갔다가 남은 감정을 확인하는 단편 영화 ‘왼쪽을 보는 남자’를 썼고, 장편으로 확장하며 외연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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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은 빛난다. 이동휘는 특유의 코믹스러움으로 담이 걸린 설정을 능청스럽게 표현한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내뱉는 대사는 애드리브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정은채는 이전 작품의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평범한 30대 여자를 그렸다. 이미 무너진 사랑을 놓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은 정은채를 통해 공감 요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