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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대표적인 피아노곡을 꼽으라면 ‘트로이메라이(Träumerei)’를 들 수 있다. 독일어 곡명인 이 작품의 뜻은 ‘꿈’이다. 클래식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첫 소절만 들으면 “아, 이 곡!” 하고 탄성을 터뜨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공연에 나선 유명 피아니스트가 트로이메라이를 앙코르 곡으로 선택하면 되레 성의가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곤 한다.
슈만은 서양 작곡가 가운데 사연이 가장 많은 사람이다. 국내 작가 이성일이 쓴 ‘슈만 평전’은 페이지 수가 831쪽에 달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생애를 그린 소설가 로맹 롤랑의 ‘장 크리토프’만큼 두껍지는 않지만 흔히 말하는 ‘벽돌책’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슈만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작품 세계를 꼼꼼하게 담으려면 이 정도 페이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당대 최고의 여성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날렸던 클라라와 슈만의 결혼 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하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둘의 처절했던 연애사를 모르는 이가 없다. 아홉 살 연하에 아이돌 스타급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와 풋내기 작곡가 슈만의 결혼을 호락호락 승낙할 부모는 없었다. 클라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는 슈만의 피아노 스승이기도 했지만 피아니스트는 물론 작곡가로서도 아직 크게 성공하지 못한 슈만을 사위로 맞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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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은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방전을 펼쳤던 비크를 고소하며 클라라와 결혼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벌였다. 힘겨운 법정 공방전 끝에 승리한 슈만은 서른 살에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 소송에 진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는 슈만에 대해 거짓 비방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 신세까지 져야 했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클라라와의 달콤한 연애 시절 그녀에게 바친 어린이 정경 모음곡 중 하나다.
클라라를 놓고 벌인 180여 년 전 슈만과 비크의 소송전은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와 하이브의 법정 공방과 묘하게 오버랩되며 여운을 남긴다. 민 전 대표의 뉴진스에 대한 열정은 슈만의 클라라에 대한 처절한 사랑과 광적인 애착을 연상케 한다. 민 전 대표의 기자간담회를 보면 뉴진스에 대한 그의 애착과 정성이 슈만의 열정에 비할 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벌어진 진흙탕 싸움을 꼼꼼히 살펴보면 누가 법정 공방의 승자가 될지 단정하기 힘들다. 기업의 논리와 법리의 해석 잣대로 본다면 민 전 대표의 뉴진스와 어도어에 대한 집념은 위험해 보인다. 대중의 시선과 법정의 눈높이는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뉴진스는 최근 민 전 대표의 어도어 복귀 등 요구 사항을 시정하지 않으면 전속 계약을 해지할 것이라는 통보를 어도어에 보냈다. 뉴진스를 둘러싼 민 전 대표와 하이브의 복잡한 운명의 실타래를 단번에 풀 수 있는 마법이 과연 있을까.
대중 문화이건 순수 예술이건 아티스트가 소송전에 휘말리는 이유는 복잡하다. 금전 문제와 예술적 이상 사이의 괴리, 주변 사람들 간의 관계 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먼 발치에서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힘겨운 고통 속에서 아름다운 창작품이 만들어지고 대중들은 그런 작품들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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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은 슈만은 작곡가로서 평생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로맨틱한 이상을 꿈꾸며 음악적 동반자를 만났다. 슈만의 주옥같은 교향곡과 현악곡, 그리고 피아노 소품은 클라라와의 끈끈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결과다. 그리고 그들의 삶과 예술은 요하네스 브람스라는 차세대 위대한 음악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K팝의 위기를 언급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어도어의 경영권 분쟁과 맞물려 K팝 위기는 도드라지게 부각되고 있다. 한국 음악 시장의 논리와 아티스트를 향한 팬덤의 열정적인 사랑을 모두 충족시키는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은 뉴진스를 둘러싼 이번 사태가 K팝 시장의 발전과 한국 대중문화의 도약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뉴진스를 둘러싼 민 전 대표와 하이브의 갈등은 K팝의 더 큰 성장을 위한 일시적 진통이다. K팝의 위기가 새로운 도약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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