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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신약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암치료를 맡는 병원과 의학교육 및 연구를 각각 담당하는 기관, 신약개발 전문 바이오벤처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생태계가 구축돼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28일 오전 10시 30분.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에서 조병철 종양내과 교수의 발표를 듣던 에드가르스 링케비치 라트비아 대통령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을 실무 방문 중인 링케비치 대통령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주한라트비아대사, 투자개발청장 등 참모진을 대동하고 서울 서대문구 연세암병원을 방문했다. 제약바이오 및 임상연구 분야의 협력 강화 차원에서 진행되는 ‘한-EU 생명과학 프론티어 프로젝트(Han-EU Life Science Frontier Project)’의 주요 임상 관계기관 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 위해서다. 현지 의료기관 중 가장 규모가 큰 폴스트라딘스 대학병원(PSCUH)의 병원장과 제약바이오업계 1위 기업인 그린덱스 최고경영자(CEO)도 동석했다.
이번 방문은 한국처럼 자체 개발 항암제를 보유해야 한다는 링케비치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신약이 양국간 가교 역할을 한 셈이다.
철저한 보안 아래 국내 유일의 중입자치료센터를 둘러본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신약개발이었다고 한다. 조 교수는 “렉라자 같은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고 자국 내 바이오산업을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쉼 없이 질문을 받았다”며 “국가 최고 통치자가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를 갖고 신약개발과 임상연구를 직접 챙기는 모습에 신기하고 내심 부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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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권위자인 조 교수는 이날 국산 항암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이끈 주역이자 연세-유일한 폐암연구소장, 다안암연구실장 자격으로 강단에 섰다. 조교수 시절이던 2008년 2명의 연구원과 함께 사재를 털어 시작한 다안암연구실은 현재 기초학문과 임상시험을 연계하는 중개연구, 임상연구 등 100여 개의 신약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국산 신약 최초로 연매출 1조 원 규모의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는 렉라자의 전임상은 물론 병용약물인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의 전임상과 글로벌 임상시험까지 직접 챙겼다. 렉라자의 성공에 따른 경제 효과는 한 해 6억 달러로 추산된다. 다안암연구실이 지난 5년간 중개연구와 임상연구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각각 2780만 달러(약 388억 원), 3070만 달러(약 428억 원)에 달했다.
이번 협약이 체결된 데는 양국 바이오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라트비아 주요 정부부서 및 관련 기관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해 온 유진투자증권의 역할도 컸다. 양측은 이날 MOU를 계기로 글로벌 임상바이오 프로젝트를 공동 개발·수행하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더 큰 사업 기회를 모색할 계획이다. 조 교수는 “라트비아 국부펀드로부터 투자 유치를 끌어내는 등 선순환이 이뤄지길 바란다” 며 “최근 크게 위축된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심리와 신약개발 생태계가 살아나는 효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