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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트럼프 트레이드’ 충격에서 벗어나 점차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 K반도체는 여전히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제재를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한 정책으로 국내 기업들에는 되레 악재로 작용한 영향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차기 행정부가 본격 출범할 내년까지는 대외 불확실성에 주가가 출렁이는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는 전장 대비 1300원(2.34%) 내린 5만 4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투자가들이 삼성전자를 1994억 원어치 팔아치우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SK하이닉스(000660)도 1200원(0.74%) 내린 15만 9900원을 기록했고 동진쎄미켐(005290)(-3.10%), 원익홀딩스(030530)(-4.67%), 한미반도체(042700)(-2.99%) 등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주들도 일제히 하락했다.
국내 반도체주들의 추락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 제재 대상에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28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이르면 다음 주 초안보다 대폭 완화된 추가 수출 제재 방침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초안에는 화웨이 공급 업체 6개와 최소 6개의 다른 기업들이 제재 대상에 올랐으나 수정안에는 화웨이 공급 업체 일부만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 직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우려가 누그러들면서 해외 기업들의 주가는 급등했다. 네덜란드의 ASML은 이날 유럽 주식시장에서 4%대 가까이 올랐고 일본의 도쿄일렉트론도 28일 6% 이상 급등했다. 하지만 추가 제재안이 중국의 반도체칩 제조 시설이 아닌 장비 기업에 초점이 맞춰지고 무엇보다 범용 D램 부문에서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로 올라선 CXMT가 제재 대상에서 빠지면서 국내 반도체주들에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SK하이닉스는 27일 고정배당 상향 등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사흘간 9.99%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CXMT가 제재 대상에서 빠진 것은 미국 기업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중 제재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미국 기업의 이익 침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며 “CXMT의 시장 진입으로 D램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 결과 가격이 떨어진다면 결국 D램 구매자인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세계 3대 반도체 장비사인 미국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는 중국의 대형 고객사를 잃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일방적인 대중 제재를 반대해왔다.
채 연구원은 “2기 행정부에서 구체적으로 발표될 정책이 오히려 불확실성 해소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블룸버그의 보도와 같은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반도체주들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도 “SK하이닉스의 경우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업황 호조는 내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낸드 부문에서 내년부터 가격 하락과 출하량 감소가 예상보다 크게 일어나 HBM의 실적 성장을 상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