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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긍지를 갖고 혁신·자강(自强)해 정부 수립 100년을 맞는 2048년까지 세계 문명의 중심에 서야 한다.”
올해 88세인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최근 펴낸 ‘대한민국 100년 통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은 2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우리나라 대통령과 국회가 신뢰도에서 꼴찌를 다투는 이유는 정치가 썩었기 때문”이라며 “정치인들이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는 “국정 운영에 실패할 자유가 없다”며 “경험 많은 원로들과 유능한 인재들을 곁에 두고 조언을 들어야 한다”고 권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도래로 인한 국제 질서 변화에 대해서는 “오직 자강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1990년대 우리에게는 북한을 변화시켜 통일을 이룰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면서 “북한에 속아 호기를 놓친 역대 대통령과 국정원장, 국방·외교장관들은 국민 앞에 참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2023년 교육부가 중고등학생 1만 10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 교육정책 인식 조사’를 보면 ‘다음의 사람들을 어느 정도 신뢰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통령이 22.7%로 꼴찌를 차지했고 정치인은 23.4%로 최하위를 면했다. 신뢰도가 가장 높은 학교 선생님(86.8%)에 비하면 낙제 수준에도 못 미친다. 또 2011년 특임장관실의 국가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국회·경찰이 2.9%로 꼴찌를, 청와대는 3.4%로 꼴찌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다. 대통령과 국회가 꼴찌를 다투고 있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정치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정치가 썩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전까지, 다시 말해 이승만과 장면·박정희 정부까지는 그 밑에 부하들은 부패했는지 모르지만 국가 지도자 개인은 부패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두환·노태우 정부 들어 대통령이 현재 금액으로는 수조 원으로 환산할 수 있는 수천억 원씩을 개인적으로 착복했다. 그 이후 공익보다 사적 이익을 먼저 챙기는 부패한 리더십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나.
△적실성의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력이나 국제적 지위로 볼 때 198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해 선진국이 됐다. 그런데 이 나라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그때보다 못한 인물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게 문제다. 선진 한국에 적실한 국가 지도자가 나와야 정치에 대한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지도자의 도덕적 적실성도 중요하다. 과거 우리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을 더 앞세우는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 중 적실성을 갖춘 지도자가 있었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적실성 측면에서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내가 왜 대통령이 돼야 되고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해야 되겠다’는 의식이 분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가짜 세상, 더러운 세상을 고쳐야 되겠다’는 공인 의식에서 만큼은 적실성을 제대로 갖춘 지도자였다고 본다. 그러나 나머지 전직 대통령들은 어떤 이는 경험이 너무 부족했고, 어떤 이는 부패했고, 어떤 이는 대외 정책 성과를 사유화해 적실성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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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적실성 측면에서 충분한 자질을 보이고 있다고 보는가.
△평생을 특수부 검사 외길만 걸어왔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국정 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로 보기 어렵다. 윤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 내가 언론 기고를 통해 “윤석열 새 대통령(당선인)은 실패할 자유가 없다. 그마저 실패하면 윤석열 개인, 대통령 한 사람의 실패를 넘어 국가 붕괴, 나라 붕괴로 간다고 우려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그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이 군 출신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족한 자질을 자인하고 경험 많은 원로들과 능력 있는 인재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해서 국정 운영을 바로잡기를 바란다.
-미국의 트럼프 2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대한민국 스스로 국가의 생존을 지켜낼 수 있도록 오직 자강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미국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미국에 이익이 된다면 동맹국에도 고율의 관세를 거리낌 없이 매기려 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한 안보 문제도 돈 문제로 치환시켜 주한미군 철수까지 들먹이며 상식 밖으로 거액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주 국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고 먹거리와 에너지 등 생명 자원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트럼프의 등장은 미국이 민주주의 모범 국가 또는 세계 문명의 최선진 국가라는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명예회장은 2013년 7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밤잠을 설치게 하는 위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세계 안보의 가장 큰 위험은 우리, 미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안한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국가였던 미국이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민주주의 모범 사례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시대의 종언이 온다면 중국에 기회가 오는 게 아닌가.
△미국 시대의 종언이 곧바로 ‘팍스 시니카(Pax Cinica·중화 시대)’의 도래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국은 생명 자원의 절대 부족 상태에 놓여 있어 인류 최대 위협인 탄소 배출과 환경문제에서 가장 큰 원인 제공자로 문제 유발 국가에 가깝다. 게다가 중국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인공지능(AI), 유전공학, 사이버 우주공학 오남용 등의 ‘중국 문제군’을 야기해 국제사회에서 커다란 지탄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중국은 리더 국가가 되기 어렵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니컬러스 에버스타트가 1992년 ‘포린 어페어즈’ 겨울호에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요지의 통찰력 있는 글을 실었다. 북한이 핵 포기는커녕 핵 문제를 갖고 대화하겠다고 한마디만 해도 남한이 감지덕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물론 미국도 남한에서 전술핵을 철수하고 대화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에 돈까지 주더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문재인 정부 등은 하나같이 북한의 위장 대화 전술에 놀아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능력 강화를 방조한 셈이 됐다. 북한이 핵무력을 앞세워 우리를 위협하게 된 현실은 과거 1990년대를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아쉬움이 크다. 한때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을 지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는 “북핵 저지 실패가 미국 CIA 역사상 최대의 실패”라고 반성하고 참회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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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통일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7년 국무회의에서 “전 세계가 통일을 반대하더라도 우리는 독자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 정도로 당시엔 통일과 독자적 안보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지금도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 놓인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생존력을 유지하려면 통일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국내 일각에서 ‘2국가론’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을 편드는 듯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남북 통일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잠재적 생존 역량을 스스로 훼손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과거 우리에게 통일의 기회는 없었나.
△1980년대 이후 역대 대통령들과 국정원장, 외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30여 명은 대북 정책과 북핵 문제 다루기에 실패한 책임으로 공동 사과와 참회의 선언을 해야 한다. 당시 전 세계가 데탕트(긴장 완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존재감이 급격히 위축됐고, 1990년대 접어들어서는 소련이 무너지고 북한에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으며, 소련은 물론 중국조차도 우리에게 원조를 해달라고 손을 내미는 상황이었다. 그때 우리 정부가 제대로만 했으면 남북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대북 정책 실패에 대한 인정과 사과가 있었는데 정작 당사국인 한국에서는 한 사람도 사죄하지 않는 것인가.
-우리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 국면으로 빠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기업인들이 기업을 개인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주식회사는 개인 것이 아니라 상법상 조직이므로 사장이 자신의 사유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미국처럼 법치의 근간이 강한 나라에서는 주식회사가 철저하게 법적 규제를 받는다. 독일·프랑스·일본처럼 가문 기업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도 기업이 사사로이 운영되지 않고 가문의 명예를 걸고 공적으로 운영된다. 우리에게도 사업을 통해 나라에 이바지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사명감으로 일했던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같은 기업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인물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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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is…
1936년 경기 안성에서 태어나 양정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동안 언론인으로 일했으며 과학기술처 장관, 세계화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서울시립대 총장 등을 지냈다. 지금은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 ‘대한민국 100년 통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