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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약 먹이는 방법, 꿀팁 없을까?”
또래보다 조금 늦게 엄마가 된 J가 밤 11시가 다 될 무렵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방)에 SOS를 쳤습니다. 맞벌이를 하며 이제 갓 두 돌 지난 아들을 키우느라 도통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J는 아이의 잔병치레가 잦아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았죠. 기온이 떨어지고 찬 바람이 분다 싶으면 어김 없이 콜록거리기 시작하는데 아이한테 몇번 옮은 뒤로는 겁부터 난다고요. 지난 주말 차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의 친척 집에 다녀온 이후 아이가 유독 칭얼거리더니 아니나 다를까 독감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J는 “올해만 벌써 두 번째 독감 확진이라 휴가를 쓰기도 눈치가 보인다”며 “약을 먹이는 게 가장 고역”이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더 어렸을 적에는 약인지 모르고 잘 받아먹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약이 입에 들어가기 전부터 발버둥을 치고 혀로 뱉어내는 등 전쟁이 따로 없다고요. 겨우 먹인 약을 다 토해내고 잠이 든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우면서도 서러움이 몰려왔다는 J의 말에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을까요? “물에 설탕을 타 달게 해서 먹여봐라”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과 함께 줘봐라” 같은 조언부터 로켓배송이 가능한 실리콘 약병 추전까지 ‘육아 만렙’ 친구들의 조언이 쏟아졌습니다. 육아의 문외한인 저도 열심히 머리를 굴렸죠. 그러다 “약 먹이는 횟수를 줄이면 한결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하루 한 번만 먹으면 인플루엔자(독감) 증상을 신속하게 완화해 줄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가 등장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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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독감 치료제라고 하면 글로벌 제약사 로슈가 개발한 ‘타미플루(성분명 오셀타미비르)’를 떠올립니다.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로슈는 신종플루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 항바이러스 의약품 타미플루로 소위 대박을 터뜨렸죠. 타미플루가 당시 유일한 알약 형태의 신종플루 치료제로 쓰였거든요. 특허가 만료된 이후 100여 개의 제네릭 의약품(복제약)이 출시돼 가격도 저렴합니다. 1만 원 안되는 가격으로 10알을 처방받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하루 2알씩 5일간 먹어야 하는 탓에 어린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선 부담이 컸죠.
로슈는 타미플루 이후 약 20년만에 후속 약물 격인 ‘조플루자(성분명 발록사비르마르복실)’를 출시했습니다. 닷새 동안 총 10알을 먹어야 하는 타미플루와 달리, 단 한번만 먹어도 되는 게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히죠. 그럼에도 타미플루보다 바이러스 배출 기간을 2일 이상 줄이고 증상 완화까지 소요된 시간이 약 26.5시간 단축됐다는 임상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강력한 효과의 비결로는 차별화된 작용기전이 지목됩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생명주기는 바이러스 진입, 탈외피, 바이러스 복제, 바이러스 발현 및 출아, 바이러스 방출의 다섯 단계로 나눠지는데요. 기존 항바이러스제들이 마지막 바이러스 방출 단계에서 작용하는 반면 조플루자는 세 번째 바이러스 증식 단계에 작용해 바이러스 복제를 억제합니다. 바이러스 복제 초기 단계의 진행을 억제하는 최초의 항바이러스제인 셈이죠.
조플루자는 2019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은 만 12세가 지났을 때부터 복용할 수 있었지만 작년 말 허가사항이 변경되며 만 1세 이상 소아의 인플루엔자 감염증 치료 및 노출후 인플루엔자 감염증의 예방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에 녹는 현탁액 과립 제형도 추가로 도입돼 아이들에게 먹이기 한결 용이해 졌죠. 굳이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신약인 데다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약값이 7~8만 원대에 형성돼 있다는 겁니다. 약을 먹이기 힘든 아이가 독감에 걸렸을 때 또다른 선택지는 ‘페라미플루(성분명 페라미비르)’입니다. 수액처럼 맞는 주사제로 1회만 투여하면 되는데 마찬가지로 비급여 항목입니다. 병원마다 7~15만 원 가량의 비용을 지불해야 해 검사 비용까지 고려하면 부담이 적지만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