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발언을 꺼리던 연예계 분위기가 12·3 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바뀌는 추세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일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 명, 경찰 추산(비공식) 15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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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엘은 개인 소셜미디어서비스(SNS)를 통해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한 사진과 "몸 좀 녹이고 재정비하고 다시 국회로!"라는 글을 올렸다. 이날 여당 의원들의 퇴장으로 탄핵소추안이 폐기되면서 답답한 마음에 올린 것으로 추측된다.
배우 신소율은 시위 현장 사진과 함께 "투표해 주세요. 어떻게 이래요"라며 표결 참석을 호소하는 짧은 글을 남겼다. 고아성도 여의도 63빌딩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한국이 싫어서 ×. 한국을 구해야 해서○"라는 문구를 남겼다.
배우 고민시는 SNS에 "3시"라는 짧은 문구와 함께 촛불 이모티콘을 붙인 게시물을 올렸다. 이날 오후 3시에 열린 촛불 집회를 지지하며 참여를 독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배우 이주영, 남윤수, 래퍼 지구인 등이 집회 참석 사진을 올리며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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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 도중에 '촛불 집회'를 언급하거나 기프티콘을 선물하는 방식으로 집회를 응원한 스타들도 있었다.
배우 김윤석은 영화 '대가족' 무대인사 도중 "(여의도 쪽은) 교통이 굉장히 안 좋다더라. 날도 이렇게 추운데. 마음 같아서는 가고 싶은데 저희도 무대인사를 하러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라며 "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주말이 되도록 하자"라고 안타까워했다.
가수 정세운은 전날 공식 팬카페에 핫팩 기프티콘 100장을 선물하고 "모두 감기 걸리지 마. 행봉(정세운 응원봉) 들고 흔드는 손이 언제 어디서든 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팬들을 응원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에 출연한 배우 오진석도 7일 엑스(X·옛 트위터)에 "따뜻한 음료라도 마시며 쉬어"라는 문구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팬들에게 편의점 상품권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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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멤버들과 몇몇 배우들은 공개적인 SNS가 아니라 팬 소통 플랫폼을 통해 입을 열었다.
배우 박보영은 "어제 잠 못 잔 사람들 많았을 텐데 오늘도 고생 많았어. 나는 시작이 늦어서 이제부터 시작이야. 나 대신 잘 봐주기로 해"라며 "오늘도 무탈한 하루 보내. 추우니까 꽁꽁 싸고 나가야 해. 조심히 다녀와. 오늘따라 더 추운 것 같아. 따뜻한 봄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그치? 안아주고 싶은 날이야"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배우 이동욱도 밴드 스콜피온즈의 '변혁의 바람'(Wind of Change) 가사 일부를 공유하며 "힘내자. 추운데 따뜻하게 나가고 봄은 반드시 온다"라고 팬들을 격려했다.
그룹 엔시티 위시 시온, 엔믹스 규진, 스트레이키즈 현진 역시 겨울 야외 집회에 맞게 '따뜻한 옷차림'을 강조했다. 그룹 스테이씨 멤버들은 전원이 상태 메시지를 촛불 이모티콘으로 바꾸며 간접적으로나마 응원의 메시지를 펼쳤다.
직접 집회에 대한 소신을 표출한 이들도 있다.
그룹 루셈블의 혜주는 "오늘 여의도 가는 크루(팬클럽 명)들 정말 멋지고 대단하고 고맙고, 여건이 안 돼서 멀리서 소리 내는 크루들도 멋져. 추운데 조심히 잘 다녀와. 누군가는 내가 의견을 밝히는 게 불편할 수 있겠지만, 아이돌이기 전에 국민이기 때문에 난 이게 맞다고 생각해. 힘내자"라고 말했다.
가수 이채연은 "그때도 엄청 추웠는데 오늘도 엄청 추웠을 것 같아. 다들 몸조심하고 건강 챙겨 가면서 해. 지치지 말고 끝까지 해 보자"라는 메시지에 "정치 이야기할 위치가 아니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이채연은 "정치 이야기할 수 있는 위치는 어떤 위치인데?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알아서 할게. 연예인이니까 목소리 내는 거지. 걱정은 정말 고마워"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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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특히 K팝 업계는 방송·영화계에 비해 정치적 발언이 더욱 적은 곳이었기에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일각에서 이 같은 변화는 최근 주목 받고 있는 K팝 아이돌 그룹 팬들의 집회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AFP 통신 등 외신들은 "K팝 속에서 참가자들이 즐겁게 뛰어다니고,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LED 촛불을 흔드는 등 일부 시위는 댄스파티를 연상시켰다"며 "새롭게 집회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집회 참여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석했다는 인증글을 올리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시(Whiplash)'를 개사해 '윤석열 탄핵'이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2030 여성들이 주축인 K팝 팬들은 각기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을 상징하는 응원봉을 집회 현장에 들고 나와 흔들면서 새롭게 집회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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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회는 지난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만 표결에 참여해 의결 정족수 미달로 탄핵안은 폐기됐다.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인 200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여당인 국민의힘은 '탄핵안 부결'이라는 당론에 따라 퇴장하면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자리를 지키던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다시 돌아온 김상욱, 김예지 의원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내란 범죄 관련 정황을 보강한 2차 탄핵소추안을 다시 발의해 임시국회 둘째 날인 12일 본회의에서 보고하고, 토요일인 14일 표결에 부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