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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 불안으로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솟은 ‘환율 리스크’에 따른 건전성 위기를 사전에 막기 위해 금융 당국이 금융권의 자본 비율 관련 ‘패키지 규제 완화’를 내놓았다. 기업 등 실물경제로 리스크가 번지지 않도록 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취지지만 이미 소상공인·서민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상생금융 재원까지 떠안은 금융권 입장으로서는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19일 ‘기업금융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당초 연말에 하기로 한 스트레스 완충 자본 규제의 도입 시점을 내년 하반기 이후로 미루는 등 각종 규제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우선 스트레스 완충 자본 규제 도입을 내년 하반기 이후로 연기하고 내년 상반기 중 도입 시기·방법을 재검토한다. 금융 당국은 위기 상황 대비 차원에서 올 연말부터 은행권에 기존 최저 자본 규제 비율에 최대 2.5%포인트까지 추가 자본을 더 쌓도록 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환율 급등으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도입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은행권의 외환 포지션 중 해외 법인에 대한 출자금 등에 대해서는 환율 변동에 따른 시장 리스크를 위험 가중 자산 산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국내 기업에 대한 대출·투자 관련 부담 완화를 위한 조치도 이뤄졌다. 현재 벤처기업 등에 투자하는 신기사펀드·벤처펀드 등 투자 조합은 일괄적으로 위험 가중치 400%를 적용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실제 투자한 자산에 대한 위험 가중치 적용으로 바꾼다. 또한 국내 기업에 대해서도 해외 외부신용평가기관(ECAI)에서 받은 평가 등급을 대출·채권 위험 가중치 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은행들에 내년 사업 계획에 ‘실물경제 안정을 위한 역할’ 내용을 포함해달라고 요청하면서 포트폴리오를 ‘가계·부동산’ 부문에서 ‘기업·성장자금’으로, ‘부채 중심’에서 ‘투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트럼프 트레이드와 비상계엄 사태 여파에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금리 인하 속도 조절까지 시사하는 등 대내외 리스크가 커지며 국내 기업들의 자금 조달 위축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은행이 자금 지원에 적극 힘써달라는 것이다. 우선 환율 급등으로 국내 기업들의 외화 결제 및 외화 대출에 대한 부담이 급증한 것을 고려해 만기 조정을 적극 검토해줄 것을 주문했다.
은행권에서는 가계대출 관리, 조 단위로 예상되는 상생금융 지원에 이어 기업금융 확대를 통한 실물경제 지원이라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면서 큰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과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은행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금리 하락까지 이어지니 내년 은행 수익성이 무조건 좋을 것이라고 확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년 경영 계획을 수립하는 상황에서 실물경제 지원 방안까지 추가하게 되니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국내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고 환율이 급등하자 수출입 기업 지원 등 주문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고 있어 부담이 가중된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심사 문턱을 높여야 하는데 상생금융에 자금 지원 주문까지 들어오니 은행 고유의 심사 및 리스크 관리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