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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한국 증시도 속절없이 추락했다. 설상가상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실적 전망을 내놓자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연준의 매파적 금리 인하와 반도체 시장 둔화라는 두 가지 악재가 국내 증시에 한 번에 쏟아지면서 외국인과 개인 투자가들이 떠난 국내 시장을 지키던 기관마저 17거래일 만에 순매도로 전환했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장 대비 48.50포인트(1.95%) 하락한 2435.93에 거래를 마쳤다. 이달 11일 이후 6거래일 만에 또다시 시가총액 2000조 원 이하로 추락했다. 특히 12·3 계엄 사태 이후 수급을 뒷받침하던 기관이 17거래일 만에 매도 우위로 돌아선 게 직격탄이 됐다. 전날 순매수를 기록했던 외국인도 환차손 우려로 하루 만에 매도 우위를 기록했다. 이날 외국인과 기관의 코스피 순매도 규모는 각각 4343억 원, 5042억 원이었다. 코스닥지수도 1.89% 하락한 684.36에 마감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에서 겨우 벗어난 국내 증시는 글로벌 경제 급변이라는 파고에 무너져 내렸다. 미 연준이 내년부터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물가 전망도 상향하자 시장에 불안 심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51.90원에 마감해 외국인의 한국 증시 외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증시를 덮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경기 침체가 아닌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하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외국인 매도 압력으로 코스피의 단기 변동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마이크론이 기대 이하의 실적 예상치를 발표하자 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까지 확산하면서 증시를 끌어내렸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1800원(3.28%) 내린 5만 3100원에, SK하이닉스 역시 4.63% 하락한 17만 5000원에 마무리했다.
마이크론의 암울한 실적 전망은 국내 메모리 기업에도 부담이다. D램 3강인 이들 기업이 전 세계 메모리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고 뚜렷한 사이클이 있는 레거시 D램 산업 특성상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탓이다. 게다가 중국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가 초기 물량이기는 해도 DDR5를 양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불안감을 키웠다. 이미 D램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어 올 4분기에 이어 내년까지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두 기업의 목표주가는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AI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놓친 만큼 레거시 반도체 수요 둔화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2분기까지 레거시 반도체 업황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상반기가 지나야 회복세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이날 음식료(1.17%), 기계 장비(0.1%)를 뺀 전 업종이 하락할 만큼 투자 심리는 극도로 싸늘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역사점 저점일 정도로 예상 가능한 악재가 대부분 선반영된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상승 동력이 부재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환율 급등으로) 수출 업체에는 환율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구간이라는 점은 그나마 긍정적”이라며 “다만 (원화 가치 하락이) 증시 수급 측면에서 (외국인 이탈 등을 유인할) 악재인 데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과 맞물린 기업 타격과 불안 심리 등을 감안하면 보수적 대응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