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들이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 대항전 방식으로 기업들을 전폭 지원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업들은 불합리한 규제와 재정·인프라 지원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시대에 급성장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시장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D램 분야에선 중국이 16~19나노미터(㎚) 공정까지 기술 격차를 좁혀 10~12㎚급의 한국 D램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혁재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18일 “위기 징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K반도체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위는 이날 주 52시간 근무제 등 규제 정비, 300조 원 규모의 재정 지원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반도체 전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연구개발(R&D)을 가로막는 획일적 규제인 주 52시간 근무제를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 지금도 해외 첨단산업 기업들의 연구실은 기술 개발을 위해 밤낮없이 돌아가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주 52시간제 탓에 퇴근 시간이 되면 일률적으로 연구실 서버와 장비를 끄고 개발자들의 근무를 중단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공학한림원은 “대한민국의 비밀병기인 ‘부지런함’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과도한 노동 규제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정부의 보조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학들은 수도권 정원 총량 규제에 묶여 인재 양성을 위한 학과 신설·증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도체 공장 가동을 위해 필수적인 전력·용수를 제때 공급 받지 못해 반도체 속도전에서도 밀리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가 발의한 반도체 지원 법안들이 계류돼 있다. R&D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예외, 정부의 보조금 지급 근거 조항 신설, 인재 양성 및 전력·용수 인프라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야는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반도체특별법을 연내에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 제고를 가로막는 규제들을 혁파하고 재정·세제·금융 등 전방위 지원을 강화해 K칩의 생존과 부흥을 뒷받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