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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에 처음으로 참석해 계엄 선포는 곧 국정 안정을 위해 행정부 수반으로서 내린 정당한 국정 수행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 측의 탄핵소추 사유를 전면 부인했다. 포고령은 형식상 작성된 것에 불과해 실행 의지가 없었고 12·3 계엄 당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21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1시간 43분간 진행된 3차 변론기일에서 12명의 대리인을 대신해 직접 변론에 나섰다. 지난 2차 변론기일이 4시간 이상 진행되면서 이날도 오후 늦게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국회 측이 제시한 증거 영상만을 심리하고 양측이 추가로 변론을 제기하지 않아 2시간 안에 종료됐다.
이날 윤 대통령 측 대리인은 “형평성 원리에 따라 제출한 영상 증거도 같이 심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것을 심리할 수는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윤 대통령은 당초 예정에 없었던 문 헌재소장 대행의 직접 심리에도 응했다. 대리인 측은 “예정돼 있지 않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윤 대통령은 “재판장께서 하시는 것이면…”이라며 답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탄핵심판 재판장인 문 헌재소장 대행은 윤 대통령에게 이날 두 가지를 질문했다. 먼저 “국가 비상 입법 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쪽지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윤 대통령은 “준 적도 없고 계엄을 해제한 후에 한참 있다가 언론에 메모가 나왔다는 것을 기사에서 봤다”며 “기사 내용도 부정확하고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밖에 없는데 장관은 그때 구속돼 있어서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 했다”고 밝혔다. 이어 “보다 자세히 질문해주시면 답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진우 수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계엄 선포 후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내렸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탄핵소추 사유로 명시된 포고령에 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계엄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 작성된 것이며 실행하거나 실제로 실행할 의지조차 없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입장이다.
이어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으로 윤 대통령 측이 주장해온 부정선거 의혹에 관해서는 “부정선거 의혹이 음모론이고 계엄을 정당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이미 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선거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있었다”며 “2013년 10월 국정원의 선관위 전산 장비 일부를 점검한 결과 문제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부정선거를 색출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선관위 전반 시스템을 점검하고 팩트를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측이 제시한 증거 영상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증거로) 보여주신 영상 잘 봤다. 군인들이 본청사에 진입했는데 직원들이 저항하니 스스로 나오지 않았나”라며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했다고 국회 측이 주장하는데 국회와 언론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보다 더 강하다”며 계엄 해제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 의결이) 막거나 연기한다고 막아지는 일이 아니다”라며 “(국회가) 국회법에 딱 맞지 않는 신속한 결의를 했다. 그렇지만 저는 그걸 보고 바로 군을 철수시켰다”고 주장했다.
군인들이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을 지나치는 증거 영상에 대해선 “국회의장 공관 옆에 군인들이 지나간 것을 마치 국회의장을 새벽 2시에 체포할 것처럼 (말하는데) 그게 아마 제가 볼 때는 퇴각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본인 참석 하에 증인 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탄핵 재판은 형사소송에 준해서 하는 것이고 직무 정지 상황이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다”며 “이 상황을 제일 잘 아는 것도 피청구인인데 이런 요청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변론기일에 참석해 시작하기에 앞서 재판부에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여러 헌법 소송으로 업무가 과중한데 제 탄핵 사건으로 고생을 하시게 돼 재판관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저는 철들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특히 공직 생활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갖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어 “헌법재판소도 헌법 수호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 만큼 우리 재판관들께서 여러모로 잘 살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