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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4부작 ‘소년의 시간’(Adolescence)는 ‘범죄를 저지른 아이는 괴물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든 결과물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누가 범죄를 저질렀나’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다. 가해자인 청소년들의 심리와 그들의 행동을 유발한 사회적 환경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제작과 주연을 맡은 스티븐 그레이엄 감독은 “이 시리즈가 부모들에게 자녀들과의 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며,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현대적 육아와 청소년의 심리를 탐구하는 도구로 활용되기를 희망했다.
“어린 소년들이 어린 소녀들에게 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실제 사건들을 접하면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은 단순히 개별적인 범죄 행위로 치부하기 어려운, 보다 깊은 사회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레이엄 감독이 청소년 범죄의 결과에만 주목하지 않고, 그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탐구하게 된 이유다.
‘소년의 시간’은 단순히 범죄의 잔혹성을 부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범죄가 발생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속에 숨겨진 다양한 요인들을 조명한다. 특히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의 전개 방식에서 탈피, 차별화된 시각을 제시한다. 가해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 경찰 수사 과정보다는 가해자인 청소년들의 심리를 깊이 탐구하는 데 집중한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더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또한, 기존의 범죄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학대당한 과거’ 등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피한다. 대신에 평범한 가정에서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범죄가 특정한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피해자의 가족이 아닌, 가해자의 가족이 직면하는 복잡한 감정과 갈등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부모는 자녀가 저지른 범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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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셜 미디어, 남성성의 부정적인 측면을 의미하는 독성 남성성, 사회가 전통적으로 요구하는 ‘남자다움’이 극단적으로 표현될 때 발생하는 문제, 청소년기의 소외감 같은 현대적 요소들이 범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가해자를 무조건 악인으로 그리기 보다는, 그가 어떤 환경과 심리적 압박 속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깊이 파헤치는 방식이 현실적이면서도 문제의식을 자극한다.
그레이엄 감독은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 아이들은 부모보다 소셜 미디어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말하며, 현대 사회에서 SNS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넘어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소셜 미디어가 청소년의 가치관을 왜곡하거나 조작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극 중에서는 한 청소년이 온라인에서의 인정 욕구와 현실에서의 자아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점차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지는데 이처럼 소셜 미디어가 단순한 정보 공유의 수단을 넘어서 심리적, 정서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TV 드라마 촬영 방식과는 달리 ‘원테이크’ 촬영기법을 사용한데 대해 그레이엄 감독은 “특정 에피소드는 한 번의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는데 이를 위해 배우들은 일주일 이상의 리허설을 거쳤으며, 장면별 동선을 철저하게 안무하듯 설계했다”고 밝혔다. 그레이엄 감독은 배우들에게 대사의 일부를 직접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배우들이 실제 십대들의 언어와 감정을 보다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다. 또, 즉흥적인 연기와 사전 기획된 촬영 기법을 결합해 극 중 인물들의 감정이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 덕분에 ‘소년의 시간’은 현실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강조하며, 시청자들에게 더욱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청소년들의 행동 뒤에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과 영향력이 존재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 학교,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충격적인 10대 범죄 사건을 통해 청소년 범죄의 근본 원인과 예방책에 대한 깊은 고민을 유도하며 현대 사회에서 부모와 교육자, 정책 입안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하은선 골든글로브 재단(GGF)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