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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경제 원로는 최근 기자에게 한국 경제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 ‘역대급 위기다’라는 말을 쏟아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폭탄과 내수 침체로 경기 하강이 현실로 닥치고 있는데 정부 대책은 고사하고 ‘응급 처방’ 격인 추가경정예산마저 진척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다른 나라는 재정을 풀어서 트럼프발(發)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데 우리는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재정 정책 실종의 여파는 수치로 여실히 확인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골드만삭스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 중반대로 내렸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기존 2%에서 1.2%로 한꺼번에 0.8%포인트나 떨어뜨렸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은 1% 미만으로 전망한 곳도 있다.
환율도 직격탄을 맞는 중이다.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주요국 통화 중에서 가장 맥을 못 추고 있는 게 원화다. 독일·중국 등이 관세 폭탄에 따른 경기 하방 압력에 맞서 적극적 경기 부양 조치를 단행해 자국 통화 방어 효과를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 독일은 최근 헌법상 ‘부채 브레이크 조항’을 완화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계획하고 있고 중국 역시 내수 활성화를 위해 소비 보조금 지급 등의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에 위기를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방파제로서 우리도 조속히 재정 지출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인 2%까지 끌어올리려면 10조 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iM증권도 “원·달러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정치 리스크 해소와 함께 과감한 내수 부양책이 실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지나친 돈 풀기는 물가를 폭등시키고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골든 타임에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재정을 집행하는 게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마침 여야 간 입장 차로 공전됐던 추경 논의가 경남·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을 계기로 속도를 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에는 꼭 추경 편성의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