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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 시간) 뉴욕증시가 급락했다. 물가의 진전이 나타나지 않았고, 소비자들의 심리는 인플레이션이 절정이던 2022년 수준으로 위축됐다. 자동차와 상호관세 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미국 경제의 방향을 어디로 몰고갈 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더해졌다.
28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715.80포인트(-1.69%) 내린 4만1583.90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112.37포인트(-1.97%) 떨어진 5580.94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481.04포인트(-2.7%) 내린 1만7322.99에 장을 마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주가의 낙폭은 올들어 두번 째로 큰 규모라고 설명했다.
프리덤캐피털마켓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인 제이 우드는 “(상호관세 발표일 같은) 빅데이가 있고 모두가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는 상황이라면 투자자들의 선택은 리스크를 낮추는 것”이라며 “이에 주말로 갈 수록 매도세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된 주요 2개 경제지표 모두 경제의 불안정한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증시는 오전 부터 하락했다. 우선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2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8%를 나타냈다. 상승 폭은 1월(2.7%) 대비 확대됐으며 시장 전망치(2.7%) 보다도 높았다. 근원지수의 전월 대비 상승률은 0.4%로 지난해 1월(0.5%) 이후 1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헤드라인 지표는 전월 수준을 유지하고 전망치에 부합했지만 관세 효과가 나타나기 전임에도 인플레이션이 진전을 멈췄다는 점에서 투심에 보탬이 안됐다.
함께 발표된 2월 실질 개인소비지출 증가율이 전월 대비 0.1%에 그친 점은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에 대한 불안감을 더했다. 직전월인 1월에 한파의 영향으로 소비지출이 0.3% 하락했던 점을 반영해 2월 들어서는 0.3% 수준의 반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2월 들어 외식과 숙박 서비스 분야의 소비자 지출이 전년보다 15.0% 줄어들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 분야 서비스 지출의 감소는 3년 만에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상품 분야인 ‘기타 비내구재’에 대한 지출은 21.1% 늘었다. 이는 소비자들이 관세를 앞두고 상품 가격 인상에 대비하기 위해 외식을 줄인 비용으로 상품을 구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비자들이 외식을 유지하면서 상품가격 인상을 감당할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별도로 발표된 미시간대의 조사에서 소비자들의 심리는 2월에 이어 3월 들어 더욱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시간대는 3월 소비자 심리지수가 57로 2월 64.7과 1년 전 79.4보다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 달 초에 발표된 3월 데이터 예비치(57.9)보다 낮다. 이는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동시에 장기인플레이션 기대치는 32년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소비자들은 향후 5~10년 동안의 가격 상승률이 연간 4.1%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993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표로 보이는 미국 경제의 큰 그림은 정체다. 투자은행인 파이퍼샌들러의 수석이코노미스트 낸시 라자르는 “지금으로서는 경제가 멈춰있다고 말할 수 있다”며 “가장 큰 위험은 경제 정책을 둘러싼 안개이며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록 상황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관세와 관련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구상이 현실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관세를 발표하기 전인 이 달 초 자동차 업계 최고경영자(CEO)를 불러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관세 충격을 해외 업체가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자동차 생태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일부 기업은 해외 생산과 수출 주체가 해당 기업의 현지 법인이라는 점에서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경우 기업이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기업들은 보고 있다. 이에 자동차 업계의 주가는 이날도 하락했다. 포드 자동차는 1.77% 하락했고 제너럴 모터스는 1.08% 내렸다.
가격인상 자제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 캐나다에 관세 맞불을 놓지 말라고 한 발언과 맞물려 정책 불확실성을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유럽연합(EU)과 캐나다를 상대로 미국에 대항하는 데 힘을 합친다면 더 가혹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일련의 발언들은 트럼프 대통령 역시 관세 부과 이후 가격 상승의 우려가 있고, 해외 기업에서 보복할 경우 미국 경제에도 타격이 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증시의 관점에서 정책과 경제 불확실성은 기술주 부터 소비재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X의 투자전략 책임자인 스콧 헬스스타인은 “시장이 (기술부문과 소비재 부문) 양쪽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며 “주요 수출 부문인 기술 산업은 다음 주 상호 관세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불확실성을 받고 있고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민감소비재 분야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맞물리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크 카니 캐나다 신임 총리와 통화를 통해 관계 개선의 첫 발을 디딘 점은 긍정적인 소식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자신 소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방금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와 통화를 마쳤다”며 “매우 생산적인(extremely productive) 통화였다”고 말했다. 이들은 4월 28일 캐나다 총선 이후 만나 포괄적인 협정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4월 2일 상호관세에서 캐나다에 대해 미국이 어떤 내용을 발표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증시 외 다른 자산 시장에서도 불확실성에 따른 경제 둔화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위험자산 대신 미국 국채에 수요가 몰리면서 국채 금리는 하락했다. 국채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2년물 국채 금리는 8bp(1bp=0.01%포인트) 내린 3.922%에 거래됐으며, 10년 물 수익률은 13bp 떨어진 4.239%를 기록했다.
안전자산 선호심리에 국제 금 가격은 또다시 최고가를 경신했다. 금 현물 가격은 이날 장중 온스당 3086.70달러까지 고점을 높이며 종전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일각에서는 자산시장의 혼란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정책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단기적인 심리적 혼란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우드 전략가는 막상 상호관세가 발표되면 매도세가 멈출 수 있다고 봤다. 우드 전략가는 “이벤트가 발생하면 증시가 랠리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소문에 팔고 뉴스에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4월 2일이 증시의 전환점일지, 더 큰 혼란의 시작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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