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국내 산업계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관련 법률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으로 통과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담당 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지만 법적 근거가 미비해 산업 육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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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업계에 따르면 FDA는 이달 10일(현지 시간) “오가노이드 기반 독성 테스트와 AI 기반 계산 모델 등을 통해 동물실험이 축소되거나 잠재적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기준이 되는 FDA의 방침인 만큼 전세계 보건당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내의 제도적·행정적 뒷받침은 부족한 상황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국내에서 생산·수입된 실험동물은 총 545만 3769마리로, 2019년(434만 마리)보다 25.6% 증가했다. 2020년 이후로도 매년 500만 마리 이상이 실험에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담당 부처인 식약처의 동물실험 대체 지원도 경쟁 국가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식약처 총예산 7489억 원 중 동물대체시험 관련 예산은 100억 원(1.3%)에 불과하다. 동물대체 기술에 약 1조 5000억 원을 투자한 유럽연합(EU)이나, 매년 500억 원 이상을 쓰는 미국에 비해 크게 적다. 남 의원은 “동물실험은 식품·의약품 개발과 화학물질 유해성 평가 등에 폭넓게 활용돼 왔지만 생명윤리와 효과에 대한 논란이 커지며 대체 기술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동물대체시험법 기술은 점차 개발되고 있지만,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평가, 보급, 인프라 구축, 국제 공조 등 다각적인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FDA 발표 이후 관련 업계의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오가노이드 기술이나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들은 주목받는 반면 기존 임상시험 수탁기관(CRO)들은 새로운 돌파구 모색에 나섰다. AI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을 보유한 신테카바이오(226330)는 FDA 발표 직전인 이달 10일부터 이날까지 주가가 약 27.2% 상승했고, 온코크로스(382150)는 약 48.9% 급등했다. AI 모델을 접목한 3D 바이오프린터를 활용해 피부·연골재생 기술을 개발하는 오가노이드사이언스는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오가노이드 기반 신소재 평가솔루션 ‘오디세이(ODISEI)’의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임상시험 수탁기관들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국내 최대 비임상 CRO 노터스를 인수한 HLB바이오스텝(278650)은 대체시험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강스템바이오텍과 오가노이드 기반 공동 기술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AI 신약개발 기업 아론티어와도 협업을 추진 중이다. HLB바이오스텝 관계자는 “식약처의 동물대체시험 실용화를 위한 표준화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호흡기계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안전성·유효성 평가기술 최적화 과제를 수행 중”이라고 말했다. 드림씨아이에스(223250)는 지난해 AI 기반 임상 예측모델 개발을 위한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전문 AI 개발업체와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임상 성공 예측 솔루션 개발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