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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 하고 그림을 그리고, 문장도 ‘그럴듯하게’ 만드는 생성형 AI가 세상을 놀라게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AI가 단순히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움직이고 행동하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사람처럼 걷고 손을 쓰는 휴머노이드, 하늘을 나는 드론, 스스로 판단해 도로를 주행하는 자율주행차까지. 이들은 이제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물리 세계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실제 임무를 수행하는 ‘피지컬(Physical) AI’로 진화 중이다.
최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의 보고서도 이 흐름을 짚고 있다. 보고서는 피지컬 AI가 미래 주력 산업이 될 것이라며, 관련 기술 확보와 인프라 구축의 시급함을 강조한다.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다. 하지만 보고서의 기술적 초점이 다소 편향돼 있다는 점은 아쉽다. 예컨대 멀티모달 LLM이나 강화학습, 초경량화된 LLM 등은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그것만으로는 피지컬 AI가 직면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 이른바 신뢰성·안전성·효과성을 해결하긴 어렵다.
실제로 지금의 대형언어모델(LLM)은 텍스트 기반의 추론이나 언어 처리에 강점을 가지지만,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물리 환경에서는 실시간 판단이나 안전 확보에 한계가 있다. 특히 사람과 함께 동작하거나 사람을 대신해 움직여야 하는 AI는 단순히 잘 작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안전해야 하며, 실제로 효과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바로 ‘디지털트윈 기반 시스템 엔지니어링’이 그 해답이다.
디지털트윈은 실제 물리 시스템을 정밀하게 모델링해 가상공간에 복제한 것이다. 이 디지털 세계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실험하면서, AI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미리 검증하고 조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강화학습 기반 AI가 실제 환경에서 겪게 될 시행착오와 위험을 사전에 줄이고, 신뢰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효과적인 작동 여부까지 검증할 수 있다.
피지컬 AI는 단순한 기술의 집합이 아니다. 복잡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단편적인 기술의 연결이 아니라, 통합 설계와 반복 검증을 통한 시스템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가상실험을 기반으로 한 통합적 개발 체계 없이는 피지컬 AI는 현실에서 오히려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이미 미국, 일본 등은 피지컬 AI와 디지털트윈을 연계한 테스트베드와 실험 인프라를 국가 주도로 구축하고 있으며, 관련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연구개발 중심의 분절된 접근에 머물러 있고, 실제 환경에서의 실증과 검증 체계는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가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는 시점이다.
이제는 LLM의 고도화나 알고리즘 경쟁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AI가 현실에서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하게,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검증하는 체계를 갖추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기술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현실에서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피지컬 AI는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기술이다. 동시에 그만큼의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디지털트윈 기반 시스템 엔지니어링을 중심으로, 신뢰성과 안전성, 효과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통합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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