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기반 영화, 드라마, 책 등 콘텐츠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양한 작품 속 실제 인물들을 ‘리캐스트’하여 작품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삶과 사회의 면면을 기록하겠습니다. <편집자주>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1.PNG) | 영화 '히말라야' 스틸컷. 극중 황정민은 산악인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았다. 사진 제공=CJ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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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쟁이들은 정복이란 말 안 씁니다. 운 좋게 산이 허락해서 산에 잠깐 머물다 내려가는 거죠.” (영화 ‘히말라야’ 中 엄홍길 산악인)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2.JPG) | 엄홍길 대장이 서울 종로구 소재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수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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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에베레스트(8850m)를 시작으로 2007년 로체샤르(8400m)까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6좌를 등정한 엄홍길 대장(65·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은 여전히 1년에 6번씩 네팔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제는 히말라야 꼭대기가 아닌 산 아래서 ‘인생 17좌’를 차곡차곡 쌓기 위해서다. 엄 대장의 17번째 산봉우리는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로서 네팔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를 짓는 것이다.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3.jpg) | 11차 네팔 건지 휴먼스쿨. 사진 제공=엄홍길휴먼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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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만 바라봤던 제 눈에 어느 순간 산 아래가 보이더라고요. 산 아래에 있는 아이들의 세상이 말이에요.”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던 엄 대장은 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학교를 짓는다. 2007년 엄 대장은 마지막 16번째 고봉이었던 로체샤르에서 수차례 죽을 고비를 겪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그는 히말라야에 빌고 또 빌었다. “저를 살려 보내주신다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저 혼자 누리며 살지 않겠습니다. 산 아래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습니다”라고.
히말라야로부터 깨우침을 얻고 로체샤르서 내려온 엄 대장은 이듬해 5월 28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재단을 설립, 2009년 첫 팡보체 휴먼스쿨 기공식을 열었다. 엄 대장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선 ‘교육’만이 답이었다”고 말했다.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4.jpg) | 지난 6월 4일 네팔 슈르켓에서 열린 ‘인천국제공항공사-엄홍길 네팔 휴먼스쿨 기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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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16좌 등정에 맞춰 16개 학교를 짓겠다’며 재단을 세운 엄 대장은 어느덧 네팔에 20개 학교를 건립했다. 엄홍길휴먼재단은 지난달 4일 네팔의 오지마을인 슈르켓 지역에서 재단의 20번째 학교인 ‘인천국제공항공사-엄홍길 네팔 휴먼스쿨’ 건립 기공식을 거행했다. 산 아래서 펼쳐진 그의 인생 17좌에는 20개 학교와 7800명 학생이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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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만 관객 울린 엄 대장의 ‘휴먼원정대’ 이야기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5.jpg) | 영화 ‘히말라야’ 스틸컷. 사진 제공=CJ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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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하면 2015년 개봉작 ‘히말라야’(누적 관객수 775만명)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사망한 엄 대장의 동료 고(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휴먼원정대’ 이야기를 담은 실화 기반 영화다.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6.jpg) | 고(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는 엄 대장. 엄홍길휴먼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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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대장과 히말라야 4개봉을 함께 올랐던 박 대원은 2004년 5월 학교 후배들과 함께한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사망했다. 사고 1년 후인 2005년 4월, 박 대원 시신 수습을 위해 나선 엄 대장은 눈밭 위에서 박 대원을 재회했지만, 기상악화 위기에 직면했다. 엄 대장은 이것이 에베레스트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돌무덤을 만들어 박 대원을 묻어주었다.
히말라야 등반 중 박 대원을 비롯해 동료 10여명을 잃은 엄 대장은 매일 아침 동료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는 “지금도 그들의 모습이 너무 생생하다”면서 “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7.JPG) | 엄홍길 대장이 서울 종로구 소재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수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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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산을 깎으니 토사가 흘러나오고 계곡이 황폐화되고 산사태가 일어나고…옛날엔 깨끗하고 조용했던 히말라야가 지금은 많이 오염됐어요.”
그가 동료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하던 세월이 22년, 산 아래서 학교를 지은 시간이 18년이다. 40년 동안 히말라야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엄 대장은 격세지감을 느낀다. 히말라야가 예전 같지 않아서다.
그는 “빙하가 급속도로 녹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기상기구(WMO)의 ‘2024년 아시아 기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히말라야 중부와 중국의 톈산 산맥에서는 빙하 24개 중 23개가 대규모로 유실됐다. 지난 4월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통합산악발전국제센터(ICIMOD)는 힌두쿠시·히말라야산맥 지역 적설량이 2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8.jpg)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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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장’이라고도 묘사된다. 매년 4월 말∼5월 말 등반 시즌이 되면 수만 명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찾고, 수백명이 정상 도전에 나선다. 이렇다 보니 등반객들이 버린 쓰레기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 변화까지 겹쳐 상황은 악화일로다.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수십 년 된 쓰레기들이 드러나고 빙하수로 흘러 내려가 마을 수자원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엄 대장은 “발전이 멈추지 않는 한 히말라야 환경은 갈수록 안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9.jpg) | 2024년 5월 3일 쥬갈 히말라야 정상에 선 엄 대장. 사진 제공=엄홍길휴먼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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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가 제2의 고향이라는 엄 대장은 지난해 한국-네팔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히말라야 미답봉 쥬갈 1봉(6591m)에 다시 도전했다. 2007년 로체샤르 등정 이후 17년 만이다. 17년 전 “저를 내려 보내주신다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라고 기도했던 엄 대장은 쥬갈 1봉을 오른 후에도 산신에게 빌었다. “꼭 살아서 내려가야 합니다. 20개 학교 7900명 학생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쥬갈봉에서 하산한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같은 해 12월 제19차 쉬리 프라나미 휴먼스쿨을 완공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정상에서 내려온 엄 대장은 마침내, 네팔 아이들의 지붕이 되었다.
![황정민 오른 그 산…‘히말라야’ 16좌 선 엄홍길 “비로소 보이는 건' [김수호의 리캐스트]](https://newsimg.sedaily.com/2025/07/06/2GV8T5TJEQ_10.jpg) | ‘김수호의 리캐스트’ 연재를 구독하시면 다양한 작품 속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해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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