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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한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은 투자 영역을 넘어 기부 시장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포브스 100대 자선단체의 70%가 가상자산 기부를 받고 있으며 가상자산 기부자들의 평균 기부금액이 기존 기부자보다 높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자선단체 피델리티 채리터블(Fidelity Charitable)에 따르면 2024년 약 7억 달러(약 1조 원)의 가상자산이 기부되어 전년대비 1300% 넘게 증가했다. 글로벌 기부 플랫폼인 더 기빙 블록(The Giving Block)은 지난해 평균 가상자산 기부금액이 약 1만 달러(약 1400만 원)으로, 온라인 현금기부 인당 평균 금액 128달러와 비교해 82배나 더 높다고 보고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상화폐 기부 사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20년이다. 푸르메재단·전국재해구호협회·환경재단 등이 가상화폐를 기부 받았는데 당시에는 가상화폐를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기부자가 현금화하여 전달하였다. 가상화폐를 법인이 받았을 때 회계처리, 현금화 방법이 명시된 바가 없고 수령 시 가격변동에 대한 모금 단체의 부담이 있기 때문이었다. 2021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서울지회가 1억 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직접 기부받고 즉시 현금화한 사례가 법·행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첫 시도였다.
영리든 비영리든 법인은 현금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제도적 한계였다. 개인은 가상화폐거래소에서 거래하고 보유한 가상자산을 원할 때 즉시 현금화할 수 있다. 마치 주식계좌에 있는 내 주식을 팔아 현금화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법인은 보유만 할 수 있고 현금화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기부단체로서는 가상화폐를 기부받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현금화의 유일한 방법은 장외거래였지만, 거래 과정의 불확실성과 신뢰 문제로 인해 기부단체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가운 소식은 지난 6월부터 법인의 가상자산 현금화가 단계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비영리법인에게 가장 먼저 적용되고 올해 안에 영리법인으로 확대된다.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비영리법인 가상자산 기부 가이드라인을 요약하면 설립 후 5년 이상·외부감사 대상이며 법인세법상 기부금단체, 그리고 최근 3년간 불성실 기부금 수령단체에 해당하지 않는 조건을 모두 갖춘 곳으로 대상이 제한된다. 가상자산의 종류는 현금화 가능성을 고려하여 3개 이상 원화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것만 가능하며 국내 원화거래소 계정을 통한 기부만 허용되어 해외 거래소나 개인지갑으로로 직접 기부는 불가하다. 그리고 기부받은 가상자산은 수령 즉시 현금화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내부통제 의무사항이다. 먼저 기부금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기부 적정성과 현금화 계획을 사전 심의해야 한다. 가상자산을 기부하려는 기부자는 자신의 신상정보와 기부하려는 가상자산의 출처·금액·사용목적을 사전에 기부단체에 제출하고, 기부단체는 이를 심의위원회에서 심사를 하여 수령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금이나 현물을 기부하면 무조건 환영받으면 되었는데, 기부자가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당국에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노력한 점과 초기 시행이라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한 점은 이해할 만하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의로 이루어지는 기부 현장에 대한 고려보다 자금세탁 방지를 우선으로 한 내부통제 규정은 유감이다. 이 기준은 개인 고액기부자 뿐 아니라 소액다수의 기부자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최근 기부문화는 가치 있는 일에 재미를 가미하고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ARS전화 기부에서 QR코드를 활용할 수 있고 카드결제와 간편결제 방식도 가능하다. 해피빈이나 카카오 같이가치 같은 온라인 플랫폼과 SNS에서는 ‘좋아요’를 누르기만 해도 기부 참여가 가능하다. 이렇게 기부의 장벽이 낮아지는 흐름에 현재의 복잡한 사전 심의 절차가 자금세탁 방지라는 본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지, 그리고 기부 문화 활성화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업보다 비영리단체부터 단계적으로 가상자산 현금화 제도가 시행되는 이유는 국세청 공시·감사와 같은 책무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공익성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기부자의 선의를 존중하면서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