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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000660) 주가가 또 글로벌 투자은행(IB) 리포트 영향으로 충격을 받았다.”
골드만삭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내 경쟁 심화와 가격 하락 우려를 제기하며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하향하면서 하루 만에 시총 19조 3000억 원이 증발했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9월 모건스탠리가 매도 의견 보고서를 낸 뒤 하루 만에 6.14% 떨어진 사태를 떠올리면서 외국계 보고서 ‘한 마디’에 휘청일 정도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 대비 8.95%(2만 6500원) 급락한 26만 9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달 14일 30만 원에 거래를 마치며 12년 만에 ‘30만 닉스’로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외국계 증권사의 비관론적인 보고서에 하루아침에 주저앉은 것이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이날 각각 5647억 원, 2891억 원 순매도하며 하락을 주도했다. 특히 기관은 11일부터 5거래일 연속으로 총 7672억 원어치를 팔아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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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은 무엇보다 HBM 경쟁 심화 우려 때문이다. 내년부터 산업 내 경쟁이 심화돼 HBM 가격이 처음으로 하락세로 전환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가격 협상력도 공급사가 아닌 고객사로 넘어갈 것으로 봤다. 골드만삭스는 “HBM과 범용 메모리 모두 수요가 양호해 SK하이닉스의 올해 실적 추정치는 상향 조정하지만 2026년에는 HBM 가격이 두 자릿수 비율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내년 영업이익은 올해보다 감소할 것”이라고 짚었다. 앞서 국내 증권사 미래에셋증권도 이달 14일 SK하이닉스 주가에 밸류에이션(가치 평가)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며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하향한 바 있다.
대신증권도 이날 보고서에서 내년 HBM 평균판매단가(ASP) 전망을 기존 2025년 대비 7% 성장에서 2025년 대비 6% 하락으로 낮췄다. HBM 6세대 제품인 HBM4 가격의 프리미엄 축소를 반영한 것이다. 김형근 대신증권 연구원은 “HBM 가격 하락에도 우수한 수익성(2026년 연간 HBM 영업이익률 55% 전망)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밸류에이션 관점에서는 추가 상승 여력이 제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5세대 제품인 HBM3E를 엔비디아에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으며 올해 3월에는 6세대 HBM4 샘플을 가장 먼저 공급했다. 그럼에도 가격 협상력 우려가 제기된 배경은 고객사의 HBM 세대 전환 속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로드맵이 지연되면서 후발 주자들과의 기술 격차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년에 본격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이는 HBM4는 독점 구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모건스탠리 사태’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9월 ‘겨울이 다가온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26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53.85% 떨어뜨렸다. 투자 의견은 ‘비율 확대’에서 ‘비율 축소’로 한 번에 두 단계 내려 잡았다.
다만 HBM 산업 경쟁 심화가 SK하이닉스에 실질적인 구조적 리스크로 이어질지는 시기상조라는 판단도 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HBM 매출 비중이 이미 DRAM 내 50% 이상으로 높아졌지만 경쟁사 대비 유리한 원가 구조와 높은 수율을 바탕으로 2025년까지 분기 최대 실적을 계속 경신할 것”이라며 “이달 24일 발표 예정인 2분기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고 이후 주가도 다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에 대해 목표 주가 34만 원, 투자 의견 ‘매수’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