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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에 핵 위협까지 동원하며 러시아를 향해 휴전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를 비웃듯 전쟁의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가 휴전 협상 마감일인 8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방문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전쟁이 새 국면을 맞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새벽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잠수함 배치를 언급하며 러시아를 압박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전날에는 러시아의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과 코라벨 지역을 잇는 다리가 파손됐다.
러시아는 최근 몇 달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며 영토 장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기 시작한 지난달에도 우크라이나 땅 713㎢를 점령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많은 순증을 기록했다. 같은 달 우크라이나 공습에 동원한 드론은 6297대로, 전월보다 16% 늘어 2022년 개전 이후 최대치를 나타냈다.
그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브로맨스’를 과시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처음으로 “푸틴은 헛소리를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있다”며 휴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같은 달 14일에는 러시아가 50일 안에 휴전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산 제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국에도 2차 관세를 매기겠다며 수위를 높였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공세가 계속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7월 28일 “푸틴의 확전 의지에 실망했다”며 당초 50일로 제시했던 협상 시한을 10~12일로 단축하겠다고 재차 압박했다. 이달 8일을 양국의 휴전 협상 마감일로 못 박으며 고강도 경제제재를 언급한 것은 사실상 최후통첩이었다.
러시아는 이에 맞불을 놓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텔레그램에 “그(트럼프)가 좋아하는 (종말 이후 세상을 다룬)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를 떠올리고, ‘데드 핸드’가 얼마나 위험한지 기억해야 한다”고 썼다. 데드 핸드는 냉전 시대에 러시아와 소련 지도부가 미국의 핵 공격으로 궤멸될 경우 자동으로 미국에 핵 보복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러시아의 핵 위협에 맞서 핵잠수함 두 대를 적절한 지역에 배치하도록 지시했다”며 “말은 매우 중요하고 종종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엄중 경고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미국과 러시아 간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미국 군비통제협회장인 다릴 킴벌은 “이런 식의 발언은 무책임하고 바람직하지 않다”며 “어떤 지도자도, 특히 SNS를 통해 유치한 방식으로 핵전쟁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미국 과학자연맹의 한스 크리스텐슨은 “미국은 이미 러시아를 타격할 수 있는 핵잠수함을 상시 배치하고 있다”며 “이번 발언은 긴장이 더 고조될 경우 핵무기 대응을 해야 하는 ‘약속의 함정’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돌아선 후 러시아의 발언이 변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했다. NYT는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러시아에 우호적인 미국의 입장을 활용하고자 공격적인 수사를 자제해왔다”며 “그러나 현재 메드베데프의 적대적 태도는 거의 확실히 크렘린궁의 승인 아래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주요국 중 가장 먼저 미국과 무역 협상을 시작하는 등 트럼프 코드 맞추기에 적극적이던 인도도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구매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NYT는 인도 고위 당국자들을 인용해 인도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감축에 대해 석유 회사들에 어떠한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란디르 자이스왈 인도 외무부 대변인도 “여러 나라와의 양자 관계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제3국의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며 “인도와 러시아는 꾸준하고 오랜 세월 검증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는 현재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러시아 원유 수입국으로 하루 200만 배럴이 넘는 양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는 인도 원유 수입량의 3분의 1이 넘는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