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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 협상 결과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얼미터가 협상이 타결된 하루 뒤인 8월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6명을 조사한 결과(ARS조사, 표본오차 ±3.1P, 95%신뢰수준) 국민 63.9%가 긍정적(매우 잘했음 40.5%, 대체로 잘했음 23.4%)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앞서 양국은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대신 상호관세 15%를 합의했습니다. 관세율 25%를 일본과 유럽연합(EU)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엔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 관련 자금이 포함되고, 별도로 한국은 1000억 달러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나 기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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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 협상단이 1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을 향해 밝힌 발언들에선 그동안 긴장과 간절함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김 장관의 발언은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장관은 “러트닉이 말만 하면 관세율 25%로 하자며 의자에서 일어서려고 했고 이를 붙잡는 과정들이 있었다”며 “다행히 결과가 대통령 기업 국민 성원에 (잘 마무리 됐고), 우리 기업 경제 경쟁력이 훨씬 더 강해져야겠다”는 발언으로 처절한 협상 과정을 드러냈습니다.
미국 현지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협상 과정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협상이 타결된 지난달 31일 저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아무렇지 않은 얼굴 밑으로 피말리는 심정을 숨겼던 지난 며칠이었다”고 소회를 적었습니다. 그는 대미 관세협상이 타결되기 전 “둘이 앉아 한동안 말이 없던 통님(이재명 대통령)이 ‘강 실장님, 우리 역사에 죄는 짓지는 말아야죠’라고 나지막이 말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계산에 계산이 거듭됐다”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는 없을까, 피치 못할 상처를 최대한 줄이는 길이 무엇일까, 대통령은 자주 답답해했다”고 밝혔습니다.
강 실장은 평소에 막힘없던 그가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고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며 “협상이 어떤 국민에게 예상치 못한 부담으로 돌아가진 않을까 하는 염려와 모든 답답한 순간에도 돌파구를 찾아내려는 대통령의 고심이 읽히는 시간이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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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협상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 기재부와 산업부 장관, 그리고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그리미어 미 USTR 대표 간 '2+2 통상협의'가 지난달 24일 갑작스럽게 무산되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습니다. 당시 구 부총리는 비행기 탑승 1시간 전에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방법은 전력투구 밖에 없었습니다. 협상팀은 일주일 동안 러트닉 장관을 6차례 만나는 등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집요하게 쫓아다녔습니다.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은 러트닉 장관의 뉴욕 롱아일랜드 사저를 방문하는 한편, 스코틀랜드 일정까지 따라가 한국 입장을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너무 매달리는 인상이 오히려 협상에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 됐지만 물러설 곳도 없었습니다. 부처 간 고성이 오갈 만큼 긴박하고 긴장감이 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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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물꼬는 알려진대로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산업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에 한 글자를 추가해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마스가(MASGA)’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일 KBS에 출연해 “한국이 그렇게 다방면에 걸쳐서 조선 쪽에 많은 연구와 제안이 돼 있다는 것을 미국은 상상 못 했을 것”이라며 “사실 조선이 없었으면 협상이 평행선을 달렸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실장은 스튜디오에서 ‘마스가 모자’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김 실장은 “우리가 디자인해서 미국에 10개를 가져갔다”며 “이런 상징물을 만들 정도로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붉은색 ‘마가(MAGA)’ 모자를 즐겨 쓰는 점에 착안해,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러트닉 장관은 "그레이트 아이디어"(Great Idea)라며 호평하며 협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로 통상 협상을 마무리하기까지 대통령실은 단계적 접근법을 취했습니다. 처음엔 포괄적인 협력 방안만 제시해 미국 측의 니즈(needs)를 파악한 뒤, 조선업에 특화된 펀드 방안을 제시하면서 디테일을 공개했다는 것입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는 자리에 마스가 모자와 대형 패널 등을 가져가 조선 협력 투자 패키지인 마스가에 관해 설명할 때 이 대통령은 “국익 관점에서 당당하게 협상에 임하라”고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큰 틀의 지침과 함께 세부적인 전략이나 맨데이트(협상권 위임)까지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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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을 설득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두 차례 만남을 가지면서 협상의 가닥이 잡혔습니다. 수요일(7월 30일)에 (협상안이) 트럼프 대통령 앞에 갈 수도 있다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김 실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스코틀랜드에서 협상 후 우리로선 '랜딩존'(Landing zone-착륙지)이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협상팀은 스코틀랜드 회의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한 리허설을 시작했고, 구 부총리도 미국으로 급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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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은 "일본 사례, 베트남 사례, 여러 사례들을 보지 않았나. 회의를 해서 별 연습을 다 했다"고 전했습니다. 협상팀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자리를 박차고 나올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그만큼 협상은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김 실장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범위 내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면 (협상장을) 나와야 한다. 그런 경우까지 상상하고 많은 논의를 했다"고 했습니다.
김 실장은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협상 타결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인 지난달 21일 새벽 2~3시에도 워싱턴 DC 등의 소식을 전달받고 실시간으로 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김 실장의 펀드 설계와 구축, 소통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김 실장은 “(대통령이) 국익 입장에서 받을 수 있는 맥시멈을 설정하고 이것을 지키라고 했는데 현장에 간 구 부총리, 김 장관, 여 본부장이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설정한 범위 내에서 협상을 타결했다”며 “여간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국민들도 정부의 노력을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리얼미터의 같은 여론조사에서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는 질문에 국민 67.4%(매우 노력함 55.1%, 어느정도 노력함 12.3%)로 노력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리얼미터는 협상 결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못지 않게 정부의 외교적 노력 자체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준 것이라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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