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3500억 달러(약 486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약속하면서 무역보험공사·수출입은행 등 공적 금융기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무보의 건전성 지표는 전 세계 하위권 수준으로 나타나 재무 건전성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무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사의 기금배수는 21.7배로 나타났다. 기금배수는 기금의 유효 계약액을 기금 총액으로 나눈 값이다. 기금배수가 높다는 것은 기금 총액에 비해 많은 보험·보증이 이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통상 무역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문제는 무보의 기금배수가 여타 선진국의 공적수출신용기관(ECA)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무보가 2022년 말~2024년 9월 말 기준 주요국 ECA의 최신 연차 보고서를 통해 산출한 국가별 기금배수 자료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기금배수는 14.5배로 한국보다 33.2%나 더 낮았다. 2023년 말 기준 기금배수가 5.7배였던 덴마크 국영 수출투자기금(EIFO)보다 4배 더 높은 수준이다. 미국 수출입은행(USEXIM·8.1배), 캐나다 수출개발공사(EDC·10.1배)와 비교해도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과거 기금배수가 70~90배에 육박했던 것과 비교하면 건전성이 크게 개선된 모습이지만 주요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먼 셈이다.
|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대한국 상호 및 품목관세율을 25%에서 15%로 조정하는 조건으로 내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는 무보의 건전성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펀드액 중 상당 부분이 보증의 형태로 이뤄질 계획이기 때문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달 31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직후 브리핑에서 “펀드 중 직접투자액은 매우 낮을 것”이라며 “펀드 비중은 보증이 제일 많고 이후 대출, 투자 순”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의 72%에 달하는 규모의 펀드가 향후 어떤 방식으로 집행될지 미지수라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보증 기관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증 대상에 대한 엄격한 심사가 필요한데 이 같은 심사를 미국이 좌지우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이 미국에 제공한 3500억 달러의 투자는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무보의 무역금융 규모는 2022년 238조 원에서 2023년 245조 원, 지난해 237조 원 등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관세 협상 타결 직후인 3일에는 LG화학이 추진하는 미국 테네시주 양극재 공장 신설 프로젝트에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규모 금융 보증을 지원하기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대미 투자 펀드가 아직 어떤 형태로 구성될지는 정해진 바 없지만 무보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금배수나 무역보험의 법정 최대한도인 계약 체결 한도는 문제가 없도록 차차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