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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
IBK기업은행(024110)이 이달 초 서울 중구 을지로 본점 2층에 개관한 IBK역사관 이음스퀘어 입구에는 우리 헌법 제123조 제3항의 문구가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 아래에는 기업은행 설립의 근거가 되는 중소기업은행법 제1장 1조의 문구가 벽에 새겨져있다. 해당 조항은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의 자주적인 경제활동을 원활히 하고 그 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이후 국내에서는 중소기업 지원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검토돼왔다. 경제의 근간이 되는 산업 육성은 지체할 수 없는 시대의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사회경제적 상황 탓에 광복 10여 년이 지나서야 그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었다. 국책은행 설립 법안인 중소기업은행법 제정은 1961년 7월에서야 공포됐고 같은 해 8월 1일 기업은행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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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에는 기업은행의 과거 결재문서와 어음 등 지난 64년간의 발자취가 담긴 사료가 보관돼있다. 이 자료들은 기업은행이 설립때부터 지향해오던 '중소기업을 위한 은행'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관통한다. 특히 IMF 경제위기 때 중소기업의 방파제 역할을 해내며 이같은 가치가 빛을 발했다. 현병택 전 부행장은 "기업은행의 역사는 IMF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이때 쌓은 자신감과 실력, 전문적인 노하우가 성장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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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많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기업은행 임직원의 사명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건은 이른바 '기아 쇼크' 사태다. 1997년 하순 기아자동차는 부도 위기에 처했다. 금융권이 부도유예협약을 맺고 정부도 특례보증 등 회생 대책을 발표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결국 기업은행을 제외한 주요 은행들은 모두 기아자동차의 어음할인을 중단했다. 기업은행이 어음할인을 중단한다면 기아차 어음을 보유한 중소기업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 해 10월, 김승경 당시 은행장은 '어음 할인 중단 여부'를 안건으로 임직원들을 모아 긴급 회의를 열었다. 김 행장은 자료 발표를 진행한 여신기획부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어음할인을 계속 해야하냐, 말아야 하냐"고 물었다. 부장은 "중소기업은행의 존립 근거는 중소기업"이라며 "어음 할인을 지속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김 행장은 당시 배석했던 장상헌 당시 차장(이후 부행장 역임)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당시 장 차장은 "우리가 중단하면 기아는 도산하고, 우리도 같이 도산할 위험이 있다"며 "할인을 계속하면 그나마 살아날 가능성이라도 있다. 가만히 앉아 위기를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직원들의 사명감을 확인한 김 행장은 "우리만이라도 어음 할인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자"고 결론냈다. 중소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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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기업은행은 시중은행들과 달리 끝까지 어음 할인 정책을 유지했고 결국 현대차에 인수된 기아자동차는 1999년 말 창사 이래 최대 흑자 기록하며 회생했다. 기업은행 임직원들의 사명감이 도산위기에 처했던 5000여 개의 협력업체 및 하청업체의 연쇄도산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 1998년 10월, 당시 기업은행은 연 20%를 넘나들던 중소기업 대출 금리를 11.5~12.5%로 인하했다. 이에 정부와 시중은행은 난색을 표했다. IMF 정책에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기피하던 상황에서 자기희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기업은행이 금리인하 기조를 이어나가자 결국 시중은행들도 금리를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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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업은행은 이음스퀘어 개관을 맞아 각 부서별로 역사관 그룹 투어를 진행 중이다. 직원들은 현직 행장·부행장 등 상사들이 과거 작성했던 기안문을 찾아보거나 역사관 한 쪽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등 시간을 보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설명을 맡은 담당자는 직원들에게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계신 업무 하나 하나가 중소기업을 위한 일임을 체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역사관 개관은 직원의 자긍심 고취를 위한 목적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