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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9일 오후 7시 동해 울릉도와 독도 해상.
집 채만 한 높이의 파도 속에서 부산해양경찰서 소속 1503 함정의 발칸포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불을 뿜는다. 한 번에 10발씩 총 3회에 거쳐 터진 굉음이다. 격렬하게 저항하던 러시아 어선에선 정적이 흐른다. 곧이어 해양경찰 대원들이 러시아 어선에 오르면서 10시간 넘는 긴 추격전은 이렇게 종료된다. 대한민국 해양주권을 지켜낸 현장이다. 지휘관으로서 현장 상황 파악 능력과 과감한 결단력이 발휘된 결과이다. 당시 1503 함장은 류춘열 경정(현 인천항보안공사 사장)이다.
류 경정은 서울경제에 러시아 어선 검거 과정을 “러시아 어선의 격렬한 저항으로 자칫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도주할 우려가 높은 상황이었다”라며 “대한민국 해양주권을 수호하는 해양경찰 현장 지휘관으로서 모든 결과는 책임진다는 각오로 무기사용을 결정했다”라고 당시 급박한 상황을 설명한다. 류 경정은 2008년 총경으로 올라 2018년에는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해양경찰청 차장으로 영전한다.
류 경정의 이러한 현장 경험은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빛을 발한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제주 마라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창진호(24톤, 승선원 14명) 선원들의 생명을 건지 사고가 그 현장이다. 창진호가 조업하던 당시 날씨는 북서풍이 초속 19m로 강하게 불고, 4m의 높은 파도가 있는 기상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상황실에서 현장을 진두지휘한 지휘관은 해양경찰청의 류춘열 차장(치안정감)이다. 류 차장의 오랜 현장 경험으로 대한민국 국민 외에도 인도네시아 선원 6명이 승선한 창진호는 승선원 대부분 구조되면서 대한민국 해양경찰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드높였다.
정상회의를 위해 방한한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정부의 구조노력에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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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열은 1965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5남매의 맏이로, 바다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농촌에서 초·중학교를 보냈다. 초등학교때 아버지를 여의면서 가사는 늘 기울어 있었다. 공부를 곧 잘해 어려운 형편에도 어머니의 권유로 마산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여유롭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류춘열은 학비가 거의 무료인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을 하면서 바다와 인연을 맺는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대학 졸업 후 국내 유명 국적선사에 들어가 항해사로 근무하면서 틈틈이 경찰간부후보생 시험을 준비한다. 그 결과 1994년 42기 경찰간부후보생으로 선발되면서 해양경찰에 입직한다. 대한민국 해양주권 수호를 위한 길고 긴 공직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류 전 차장은 지난 2020년 3월,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끝으로 짧은 휴식에 이어 ‘인생 제2막’을 연다. 바로 국가해양 안보를 책임지는 ‘인천항보안공사’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공사는 2007년 11월 20일 설립된 공직유관단체로 △테러 △밀입국 △밀항 △밀수 등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수호하는 특수목적기관이다.
2022년 3월 인천항보안공사 6대 사장으로 취임한 류 사장은 조직 경영에도 성과를 보인다. 곪을 대로 곪은 현장 조직과의 불화를 해결하는 탁월한 조직관리 능력이다.
류 사장의 취임 후 처음 참석한 노사협의회에서는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며 서로 간 입장 차이와 감정의 골만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런 문제도 1년여 동안 소통하며 직원들의 불안전한 신분을 보장하고 예산을 확보하면서 노사 간 십수 년 묵은 앙금을 해소하는 결과를 내놓는다. 최고경영자가 노사협상테이블에 참석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노사 간 대화의 물꼬를 틀며 대타협을 이룬 것이다.
류 사장은 “긴 시간 끈질긴 설득과 노사 간 실질적이고 진솔한 대화로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라며 “현재까지 단 한 차례의 불협화음이 없는 노사관계로 발전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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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보안공사의 내부가 안정되면서 외부도 변한다. 국가안보를 튼튼히 다지는 변화다. 인천항에서 매년 발생한 밀입국 사건이 2022년 이후 없어진 것이다. 또한 2023년 4월과 7월, 그리고 올 6월에는 외국인 밀입국 사범을 검거하는 쾌거를 이뤄낸다. 모두 류 사장의 취임 이후 얻은 결과물이다.
류 사장은 “취임 이후 과분한 성과는 모두 우리 공사 직원들의 열정적인 근무가 가져온 결과”라며 “안정화된 노사관계가 가져온 성과이기도 하기에 이 자리 빌어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항만보안 정책에 대한 의견도 내놨다. 공직에서의 해양주권 수호와 인천항보안공사 최고경영자로서 경험치가 쌓인 ‘식견’이다. 류 사장은 전국 항만을 대상으로 한 통합된 경비보안업무 수행하는 조직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류춘열 사장은 “전국의 항만을 대상으로 한 통합된 경비보안업무 조직은 통일된 경비보안 기준과 절차를 적용함으로써 한층 진일보된 선진형 항만보안업무 수행이 가능해진다”라며 “자연스럽게 보안인력의 신분 또한 일원화되고 노사분규의 근본원인이 해소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