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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앞다투어 채용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기업에 부탁해서 청년들의 신입 채용을 해볼 생각”이라는 뜻을 밝힌 이후 입니다.
청년 채용을 확대하라는 사실상의 압박에 삼성부터 움직였습니다. 이 대통령의 발언 이틀 만에 삼성그룹은 5년간 6만 명, 연 평균 1만 20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같은 날 국내 주요 기업들도 부랴부랴 채용계획을 쏟아냈습니다. △현대차(005380)그룹은 올해 7200명 △LG그룹은 내년 1만 명 △포스코그룹은 5년 간 1만 5000명 △한화그룹 △HD현대그룹은 5년 간 1만 명 △GS그룹은 연간 4000명 △SK그룹은 올해 8000명 등입니다.
늙어가는 기업들, 50세 이상 비중 커져
고령화 빨라지자 30세 미만 직원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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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신입 채용을 부탁한 말은 그냥 한 말이 아닌 걸로 보입니다. 이 대통령은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기업들을 겨냥해 “합리적인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청년고용률은 8월 기준 16개월 연속 하락했습니다. 청년 인구는 줄고 있지만 그냥 ‘쉬었음’ 상태에 있는 청년들은 40만 명대에 진입했습니다.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의 문제는 국내 4대 그룹의 채용과 인적 구성을 보면 원인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005930)의 지난해 기준 임직원은 26만 2647명(국내 12만 5297명)입니다. 이 가운데 신입 사원에 해당하는 30세 미만의 직원들은 얼마나 될까요. 6만 3531명입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2% 입니다. 그런데 2년 전 만해도 30세 미만의 임직원은 8만 3155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7%였습니다. 2년 만에 소위 20대 사원이 6.5%포인트나 줄어든 셈입니다.
반면 40대 이상의 임직원은 같은 기간 7만 5516명에서 8만 5081명으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7.9%에서 32.4%로 4.5%포인트 늘었습니다. 최근 3년 간 젊은 직원은 줄고 40대 이상의 직원 비중만 늘어난 것입니다. 삼성은 50대 이상 직원의 비중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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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000660)는 어떨까요.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기준 전체 정규직 임직원은 4만 100명입니다. 이 중에 30세 미만 직원은 8357명으로 전체의 20.8% 입니다. 2022년(1만 1889명·31.1%)과 비교하면 20대 직원이 3532명, 비율로 보면 10.3%포인트나 줄었습니다. 하지만 50세 이상 직원은 지난해 3343명(8.3%)으로 2022년(2551명)에 비해 792명, 비중은 2%포인트 늘었습니다.
LG전자(066570)는 지난해 20대 직원이 9285명, 전체의 16.1%로 2022년 (8315명·14.8%)에 비해 신입 사원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동시에 50세 이상의 직원도 같은 기간 9694명에서 1만 1993명, 전체에서 비중도 17.3%에서 20.8%로 증가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기준 전체 임직원은 12만 6407명입니다. 이 가운데 30세 미만 직원은 2만 7564명으로 21.8%로 2022년(2만 6249명·20.8%)에 비해 소폭 증가했습니다. 50세 이상 임직원 비중은 27.2%로 지난 2022년(27.5%)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봉 높은 50세 버티자 20대는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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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기업에서 20대 직원 비중이 줄어드는 이유에 대해 한 기업 관계자는 “인구 구조가 그렇다”고 항변했습니다. 출생아 수가 연간 100만 명에 달했던 50대와 60만 명 대였던 1990년대 생의 인구 구성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가운데 20대의 비중은 2025년 기준 11.87%, 50대는 16.76%입니다. 30대(13.5%)와 40대(14.93%)도 20대보다 많으니 기업에서 20대의 비중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최대한 퇴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합리적인 설명이 됩니다. 실제 상황도 그렇습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을 보면 최근 몇 년 간 퇴사율이 빠르게 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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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를 보면 지난해 퇴직률은 10.1%로 2022년(12.9%)보다 2.8%포인트 줄었습니다. SK하이닉스의 퇴직률(이직률 포함)은 지난해 국내 기준 1.3%로 2022년(3.8%)에 비해 크게 감소했습니다. 자발적 이직률은 지난해 0.9%, 비자발적 이직률은 0.3%로 사실상 퇴사하지 않는 기업이 됐습니다. 현대차는 평생직장과도 같은 곳입니다. 2024년 국내 사업장의 자발적 이직률은 0.39%입니다. 2022년(0.94%)보다도 감소했습니다.
최근 TV사업 부진으로 전 사업부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 LG전자도 퇴사자가 줄어들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자발적 퇴직률은 지난해 기준 6.4%로 2022년(10.7%)에 비해 크게 줄었습니다.
연공서열식 호봉제에 정년연장 땐 ‘재앙’
기업들 “채용 확대” 말해도 현실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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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지난 2022년에도 “5년 간 8만 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결과는 앞에서 이미 진단했습니다. 삼성전자의 국내 임직원은 2022년 11만 7927명에서 지난해 12만 5297명으로 7370명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퇴직률은 줄고 30대 미만 직원의 비중은 더 크게 줄었으니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9월에 밝힌 “5년 간 6만명 채용” 계획은 지켜질까요. 삼성전자를 따라 줄줄이 채용 계획을 발표한 다른 기업들은 어떨까요.
경제계와 다수의 기업 관계자는 “어렵다”고 진단합니다. 50대의 퇴사율은 급감하고 있는데 정부는 노동계의 요구대로 정년연장 법안을 밀어붙이며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정년연장은 피할 수 없는 길이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신입 사원 평균 연봉의 3배를 받는 50대 임직원의 월급 구조 그대로 정년연장을 한다면 청년 고용률은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게 경제계의 관측입니다.
실제로 2013년 정년 60세가 법제화된 이후 대기업 정규직 부문에서 세대 간 일자리 경합이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그 결과 2010년대 들어 진입장벽이 높고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부문의 고령자(55~59세) 고용은 급증했습니다.
반면 청년(23~27세) 고용은 정체 또는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4년 대기업 정규직 부문의 고령자 고용 비중은 7.6%에서 지난해 10.7%로 증가했지만, 청년 고용 비중은 6.6%에서 6.0%로 하락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년연장과 임금체계를 동시에 개편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과연 9월 우리 기업들이 밝힌 대규모 청년 채용 계획이 계획대로 될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50대 이상 구성원의 비율만 더 늘어있을까요. 5년 후에 결과가 나오니 그때는 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