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쌀을 쏟고는

  • 2025-12-02 18:07:36
  •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쌀을 쏟고는

밥을 안치려다 쌀을 쏟고는 망연히 바라본다


급물살에 고무신 한 짝을 잃고는 해가 지도록 개울물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도 그랬다


산감이 된 아버지 산소 근처에 핀 산벚나무꽃을 바라보는 봄밤도 그랬다


망연하다는 게 더 망연해지는 요즘


쌀을 쏟듯 갑자기 나도 모르게 마음을 어딘가에 쏟아놓고 멍하니 앉아 창밖 소나무나 건넌산 상고대를 보면서


나는 더 망연해진다


-김남극



쏟은 쌀이야 다시 쓸어 담으면 되고, 떠내려간 고무신 한 짝이야 언제나 되살아나는 추억이 되지 않았는가. 떠나간 아버지도 가슴 아리지만 봄마다 산벚나무 꽃으로 되돌아오지 않는가. 망연할 때 망연한 시인이야말로 바라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많은 현대인들이 제 때 망연하지 못해 ‘물 멍’이니 ‘불 멍’조차 동경하고 있지 않는가. 지구가 데구르르 굴러 우주의 장롱 밑으로 들어가고 있는데도 제 안의 요지경 속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시인 반칠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시선집중

ad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화제집중]

ad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